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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0.일-D에게 보낸 편지-앙드레 고르

gowooni1 2008. 7. 21. 00:49

태풍 갈매기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왔다. 특히 인천은 호우 특보까지 내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가 내린 지역이다. 비가 오는 날은 집에 앉아 창밖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센티멘탈해진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즐겁지만, 사람이 별로 없는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나의 낙이다. 오늘따라 집에 있기 싫었던 나는 약간의 고생을 감수하며 구청 옆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꽂이에 꽂여있던 [D에게 보낸 편지]를 본 순간 나는 바로 집어 들었다. 작년에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너무나 읽고 싶었는데 당시 회사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바쁜 일상때문에, 금새 읽고 싶다는 생각마저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 책이 그때 당시 너무나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이다. 이 책이 쓰여진 비하인드 스토리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앙드레 고르이고, 제목의 D는 그의 아내인 도린이다. 그는 삶의 마지막에 도린을 위해 이런 책을 썼다. 이 책은 2006년 3월부터 6월까지 쓴 것을 저자의 사후에 출간한 책이다. 그 둘 부부는 만난지 60년만에, 그리고 결혼한 지는 58년만에 함께 같은 날 죽음을 맞이했다.

앙드레는1983년 아내 도린이 불치병에 걸리자, 60세가 되는 날 은퇴하기로 결심하고 몇주 후 은퇴해 시골에 내려간다. 거기서 23년이 넘게 그는 도린을 위해 산다. 그리고 삶을 공유한 그들은 죽음까지 함께 공유하기 위해 그들의 정든 시골집에서 함께 주사를 맞고 나란히 생을 마감한다. 책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마지막 부분의 이 구절과, 삶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랐을 시절의 두 사람이 함께 안고 다정하게 찍은 사진 한장은, 내 눈물을 제어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감동적이어서, 아름다워서 더욱 슬펐다. 내가 바라는 삶의 마지막 모습을 장식하고 간 그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이 세상에 이런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에 기뻐서, 이런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은 나의 애틋한 마음에 마음이 저려와서 슬펐다. 그리고 이 두사람의 사랑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는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메마른 세상에서도 이 책이 사람들의 감동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예전 텔레비젼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보았다. 인간극장 형식의 프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한 부부가 주인공이었다. 그 부부들은 아이를 갖지 않았다. 그 이유를 기자가 물어보니, 서로 너무나 사랑하여 관심과 집중과 애정이 아이들에게 가는것이 싫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굉장히 로맨틱하고 멋진 부부라고 생각하였는데, 그때 당시 같이 프로그램을 보던 '그'는 내 생각과 반대였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한 그들 부부의 삶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폄하하는 것이었다. 논쟁을 벌이고 싶을만큼 가치를 못느꼈던 나는 그냥 내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앙드레 고르와 도린 역시 58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자식을 낳지 않았다. 그에 대해 앙드레 고르는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에 좋은 아버지란, 어릴때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만이 될 수 있는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힘들것 같다. ...그리고 나는 도린의 관심과 애정이 아이들에게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그녀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었다'

 

아 얼마나 멋진가? '나는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에게서나 들을 수 있을 만한 멋진 말이 아닐까? 지금은 누구였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 그때의 '그'는 이 고르의 말을 읽고서 그때와 똑같이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사람으로만 취급할까? 만약 지금 '그'를 만나게 되면 이말을 하고 싶다. '당신의 생각은 정상적이긴 하지만, 절대 낭만적이진 않다'

 

나는 D가 부럽다. 한 남자에게 있어 생의 의미 자체였던 그녀가 부럽다. 그녀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어 같은날 같은 시에 함께 죽음을 공유해준 남자를 가졌던 그녀가 부럽다.

아니 정확히 그들 부부가 부럽다.  60년을 함께하고도 혹시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함께 하자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가졌던 그들 부부가 부럽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도 든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이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는것을 보여준 그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