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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

gowooni1 2008. 8. 6. 00:33

요즘은 이것 저것 읽어야 하는게 많은데, 유익한 것만 골라 읽으려고 노력하다보니 이것도 참 까다롭다. 집에 있던 책이라서 당연히 읽은 줄 앍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책장 한구석엔 사놓고 읽지도 않은 책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중에는 스테디셀러가 참으로 많았다.

 

이건 나의 책 소유욕을 한껏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정도 쯤은 읽어야 어디가서 책 읽었다고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구입은 했는데, 읽다보니 (읽었던 당시의) 나의 지성이 흥미를 못느끼고 그만 덮어버린 책들. 나는 이 책들을 구제해 주기로 하였다. 내손으로 거두어 들였으니 정성껏 한페이지 한페이지에 내 지문의 흔적을 남겨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첫번째로 고른 것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 책이 지금은 얼마인지 잘 모르나, 1,2,3권 전권이 7000원 일 때 구입한 것으로 보면 정말 옛날에 구입했다는 것을 알것 같다. 이게 내가 산 건지, 선물을 받은 건지 사실 기억도 잘 안 난다. 아무튼, 2008년의 나는 이제 이 책에 어느 정도 흥미가 생겼던 것이다. 정확히 이 책에 흥미가 생겼다기 보다는, 유홍준이란 사람이 예전 보다는 더 흥미로워졌다고나 할까. 유홍준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던 사람이고 숭례문 화재 때문에 사표를 냈었다. 비록 사표는 수립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이명박 정부로 넘어오면서 임기는 끝났다.

 

숭례문 화재 뉴스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고 울먹거리며, 한국 전통 문화 학교에 있는 내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한국 전통문화학교는 숭례문 부재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라 그 당시 처음으로 기자들에게 스포트 라이트를 받던, 국립 대학교이다. 그 곳 분위기는 거의 초상집 분위기라고 했는데, 사실 그곳만 그랬을까. 전 국민이 국모를 잃은 심정이었는데. 나 같이 애국심이 없는 사람 조차도 눈물을 글썽이던 사건이었는데 말이다. 그� TV에서 보았던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허탈한 표정을 잊을수가 없어 계속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박혀 있던 '유홍준=나의 문화답사기'의 공식을 풀어야 겠다는 생각을 끄집어 내게 되었다.

 

어릴 때 내가 이 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단 하나다. 재미가 없었다. 그러면 왜 재미가 없었을까? 그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파악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랬다. 책이란 것은 자신의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읽어야 재미도 있고 공감도 가고 그러는건데, 이런 종류의 책은 배경지식이 없으면 절대 재미를 못느끼는 종류의 것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이 별로 없을 어린 시절-내가 불교에 대해 뭘 알았던가, 우리나라 사찰이나 역사에 관심이나 있었던가-에 내가 이것을 읽어봤자, 백해무익까지는 아닐지더라도, 무해무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책에는 전부 때가 있다고, 지금 내게 겨우 그 때가 온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어느정도 스키마를 축적했고, 관심도도 높아졌으며, 그로 인해 무궁무진한 지식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춘 것이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겨우 이 책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실제로 나는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대부분을 여행했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사실 안 가본 곳이 울릉도.독도 빼곤 없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지리도 빠삭하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우리나라는 너무 좁아 더 이상 새롭게 갈만한 곳이 없다고 여겨져서, 몇번씩은 더 다녀온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이런 자만심에 '이제 이 책을 읽어봐도 공감대가 형성이 되겠구나'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전적으로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일반 여행을 그렇게 다녔을 뿐이고, 유홍준은 여행이 아닌 답사를 했다는 것을 내가 잠시 외면했었나 보다. 유홍준은 이 책을 저술할 당시,학자였고 교수였으며, 학생들을 인솔하고 항상 답사를 하던 사람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기분풀이 여행과는 다른 종류였다.

 

그 사실을 염두하고 보니 약간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많이 여행하고, 보고 ,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이랑 비교하면 전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까지 몇번씩 갔다와서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전부 교만이었던가?'

원래 모든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가는 곳이 어떤 역사적 사실이 있으면 더 뜻깊게 다가오고 그곳의 공기를 더욱 깊게 마시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내가 우리나라를 많이 다니면서 어떤 역사적 사실을 깨닫고 다닌 것은 아니었다. 나의 여행은 지극히 개인적이라서, 나와의 시간을 많이 가지고, 생각을 많이 하고 그로 인해 삶의 지혜라도 조금 얻으려는 목적으로 다녔던 것이다. 여기까지 나의 사색이 미치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이쪽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니, 그렇게까지 나를 몰아 부칠 필요는 없다고. 나는 나 나름대로의 여행의 방식과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이 책이 읽기 수월해졌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어졌다. 이 책을 저술한 당시가 1992년 그 즈음이니, 벌써 15년도 더 전이다. 그때와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하고 상상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고, 내가 몰랐던 유적의 역사적 사실을 친절하게 알려주니 재미있다. 그리고 이 답사 일정대로 다시 한번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파리 여행 갔다 온지 겨우 한달 밖에 안 지났는데, 나의 방랑벽은 이런식으로 또 도지고 있는 것이었다. 누가 나좀 말려줬으면.

 

다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