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에필로그

gowooni1 2018. 12. 27. 13:50




복직할 곳에 가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식사를 하고 차도 마시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 어린이집에서 아기 데려올 시간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데 머리가 꽉 찬 기분이었다. 이제 주말이 지나면 정식으로 출근을 하겠지만 벌써 정신은 회사일에 100퍼센트 쏠려버렸다. 그러는 바람에 아기에게 먹일 저녁 메뉴를 생각도 못했다. 집에 돌아와 배가 고파 낑낑거리는 아기 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급하게 냉동 대구살을 해동하여 달걀 노른자만 분리해 대구전을 만들어 주었다. 입맛에 맞는지 손을 뻗어가며 자기가 집어먹으려고 열심이다. 요새는 이유식에서 유아식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어른들 먹는 음식을 먹겠다고 아우성이고, 자기 키만큼 높은 식탁에 손을 뻗어 뭐든지 잡으려고 애를 쓰며, 음식을 입으로 넣어줘도 자기가 먹겠다고 스푼을 굳이 뺏는다. 당연히 음식은 사방으로 튀고 얼굴과 옷 등 온 몸에 범벅이 되며, 아기를 먹인 후 반경 2미터는 깨끗이 닦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 저녁을 다 먹이고 뒷정리를 한 후 아기를 재우는데 녹초가 되어버렸다. 


다시 회사에 출근하게 되면 이렇게 될 줄 예상했다. 그게 '아기와 함께 한 첫 1년'을 쓰겠다고 다짐한 계기이기도 하다. 회사 일이란 건 아무리 적당히 하더라도 나도 모르게 늘 최대한의 신경을 쓰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근무를 하는 이상 어느 정도 감정 노동도 곁들여지게 된다. 이 말인즉슨, 회사일을 하면서 다른 일을 병행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제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당연히 그때그때 닥칠 현실에 매몰되어 살아가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아기와 함께 한 나의 첫 1년은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갈 것이고, 이 첫 해에 느낀 감정들을 다시 끄집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글들은 지난 1년 간의 감정들을 기록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나중에 힘든 상황에서도 '이런 다짐들을 했었지'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반성하기 위함이다.


아기가 태어난 지 만 1년이 되고, 그 후로 정확히 6일만에 내가 태어난 지 만 36년이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내가 살아온 36년의 시간 중 지난 1년이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가장 풍요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가장 많은 반성을 하게 된 기간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점철되어 왔던 인생에 이타주의에 대한 생각이 끼어들었다. 이해할 수 없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비교하던 습관도 줄어들었고 이것이 바로 내 인생,이라는 철학이 생겨났으며 내가 가진 한도 내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생에는 여러 단계가 있겠지만 어떤 단계의 끝에 다다랐을 때, 끝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막의 시작일 뿐이며 그러므로 무언가를 빨리 끝내야겠다는 조바심을 느낄 것이 아니라 모든 단계를 천천히 즐기고 자신의 인격적 성숙마저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여유가 생겨났다. 아직 미숙한 인격체로서의 나는 앞으로 즐겨야 할 성숙의 단계가 많다는 것마저도 즐거워졌다. 이 모든 것이 아기가 가져다 준 선물이다.


쓰고 싶었지만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아 건드리지 않은 부분들도 많다. 특히 '시련'이라는 주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냥 행복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인만큼 아이도 분명 많은 시련과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고 자신의 바람과 다른 현실에 좌절도 할 것이다. 그러나 시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님을,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스스로 더 단단해지고 발전해나갈 수 있음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굳이 1년도 되지 않은 아이와의 이야기에 벌써 '너는 앞으로 많은 시련에 부딪힐 것이니 스스로 잘 이겨나가도록 하여라' 같은 어두컴컴한 말을 하자니 영 내키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 기록은 계속될 것이고 필요할 때 언급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은 무엇보다 아이에게 행복한 기억을 많이 남겨주고 싶은 단계이다. 어릴적의 행복함이 아이의 기질을 형성한다면 얼마든지 더 행복한 기억만을 남겨주고 싶은 게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새롭게 시작될 생활에서는 보다 즐거운 일이 많기를 기대한다. 아이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큰 기대이며, 이 아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말을 할지도 궁금하다.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를 놓지지 않도록 많은 에피소드들을 기록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늘 오감을 깨어놓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와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엄마가 되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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