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아기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쇼핑몰에 갔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남편은 이렇게 말하던 사람이었다.
"아기에게 용돈을 주고 그 한도 내에서 장난감을 사게 할거야."
그러나 지금은 누구보다도 장난감을 사는데 열정적이 되어 매일같이 장난감을 사다 나르는 아빠로 변모했다. 장난감을 살 때의 기준은 철저하게 '아기가 좋아할 것 같은가'가 기준이지만, 장난감을 고를 때는 완벽하게 동심으로 돌아가 두 눈에서 빛이 반짝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 큰 아들 둘을 키우는 듯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 느낌이 싫지만은 않다. 아기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자 노력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그런데 문제는 아기 장난감이나 옷가지들이 한두푼하는 게 아니란 거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예쁘다고 사온 옷과 장난감들은 6개월의 효용도 없는데, 특히 옷들은 3개월 입히면 많이 입히는 거고 장난감들은 생각보다 금방 흥미가 떨어졌다.
남편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하루라도 빨리 아기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서 용돈을 넣어주는게 좋지 않을까 하며 제안을 했다. 그 김에 우리는 아기에게 최대 얼마만큼의 용돈을 줄 수 있는지 등을 알아보다가 증여와 증여세 면제한도에 대해서까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현행법상 증여세 면제한도는 직계끼리 5천만원이지만 미성년자는 2천만원이며 이들은 10년 기준이다. 즉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2천만원을 용돈으로 주었다면 만 10년하고 1일이 되는 날 추가로 2천만원의 용돈을 세금없이 더 줄 수 있다는 거다. 즉 빨리 주면 줄수록 아기는 어린 나이에 거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미 돌이 지났으니 1년의 시간을 버린 셈이다.
"이런 걸 미리 알아뒀더라면 빨리 통장이라도 만들었을텐데 생각도 못했네."
"그렇긴 하지만, 만약 알았다 하더라도 별 수 있었을까?"
그렇다. 알았다 해도 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먼저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아직 말도 못하는 아기 용돈부터 챙기지는 못했을 거다.
지금 당장은 용돈을 못 주더라도 아기에게 좀 더 많은 자금을 마련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 미친 것은 무엇보다 나와 남편이 처한 상황 때문이다. 우리는 결혼할 때 아무것도 받지 못해 거의 제로(혹은 마이너스)에서 시작을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더란 말이다. 스타트라인이 다르다는 건 상대적 박탈감과 동시에 아무리 노력해도 평균으로 갈 수 없다는 좌절감을 끊임없이 안겨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기에게만큼은 이런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고생은 물론 이런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이 뭔지도 모르게 살게끔 해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아기에게 경제교육을 잘 해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끊임없이 들었다. 우리 부모 세대가 전후 세대로서 그저 먹고 살기 바빴던 시절 태어나 열심히 사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인 줄 알고 자랐다면, 나와 남편은 먹고 사는 것만큼은 걱정 없어도 그저 공부하고 취직 잘하는 것이 미덕인 줄로만 알고 자랐던 세대다. 당연히 경제관념은 전혀 없었고 재테크란 것도 대학 다 졸업하고 취직하고 나서 월급이란 게 손에 떨어질 무렵에나 관심이 갔으니 돈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돈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니 주식투자나 펀드 같은 것으로 해서 말아먹기 십상이었고 돈의 흐름을 볼 줄 아는 눈은 아무리 노력해도 얻어지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보니 경제 감각이란 것 역시 외국어처럼 어릴적부터 몸에 배어있지 않으면 후천적으로 터득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의 아이에게만큼은 최대한 증여를 해주고 경제교육을 잘 시켜 나중에 돈으로 걱정하는 일만큼은 없게끔 해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러던 중 이 생각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해보게끔 만들어주는 기사를 보았다. 홍콩 배우 주윤발이 전재산, 홍콩달러로는 56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는 8100억원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기사였다. 즉시 그 사람의 나이를 검색해보았다. 55년생이라 뜨니 그가 8100억원을 기부한 2018년에는 63세인 거다. 나이를 검색해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8100억원을 기부한 것도 대단하지만 그 재산을 쓸 날도 앞으로 많은데 쓰기를 포기한 것이고, 또 그 나이 이전에 이미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8100억원이란 천문학적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하기 위해 한 리포터가 비유하기를, 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이 평균 8억원이니 아파트 1000채, 거의 1000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 하나를 통째로 기부한 셈이라는 거다. 확실히 물리적으로 비유하니 얼마만큼의 재산인지 잘 와닿았다. 남들은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데 전 생애를 걸쳐 아끼고 모으고 하는데, 그걸 이미 63세 이전에 모은 후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인물이라니. 주윤발의 영화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인터뷰하느라 나온 그의 얼굴을 보니 눈에서 이미 '선함'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의 기부 사실을 모르고 봤을 때도 그의 외모를 '선하다'고 평가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보다 그가 말 한 이 한 마디가 더 기억에 남았다. "나에게는 하루 밥 세끼를 먹는 것과, 잘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생에 그 이상 바랄게 뭐가 있을까?"
그의 기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돈에 대한 철학을 꽤나 흔들었다. 몇 천만원 혹은 몇 백만원이 될 세금이 아까워 증여세 면제 한도를 찾아보는 나의 소시민적 생각은 사실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대리만족 부모의 모습 같았다. 대리만족은 자신에 대한 긍지가 없기 때문이라 믿은 나는 나 자신만큼은 대리만족 하는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해왔으면서도, 내가 갖지 못한 경제적 풍요 혹은 여유를 아이에게 강요한다면 그것 또한 다른 모습의 대리만족이 아닐까 싶었다. 대리만족 심리는 대부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기의 미래를 제한한다. 공부하라 강요하지만 않았다면 더 큰 날개를 펼칠 수도 있었을 아이들이 공부가 전부인 세계 안에서 날개를 잘리고 평범한 아이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내가 만약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어야 한다고 은연중 압박을 한다면 아이는 경제적 풍요를 너머서 어마어마한 금액을 사회에 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텐데 내가 그 날개를 꺾어버릴 수 있는거다.
기왕이면 나의 아이가 자기 밥그릇 챙기기만 급급한 사람이 되기보다 사회 전체를 생각하고 아량이 큰 사람이 되면 좋을 것이다. 고대 명문가나 귀족들 사이에서 가르쳤다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자세와 조금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의 깜냥이 아직 자기 밥그릇 챙기기 급급한 상태에서 아이에게 기부나 사회환원을 가르치기는 쉽지 않을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발전을 이뤄놔야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는 법이니, 그러지 못한 현실이 뼈저리게 아쉽다. 주윤발처럼 8100억원 기부는 힘들지라도, 1억 아니, 몇 천만원이라도 기부할 수 있을만큼의 능력과 아량을 갖췄더라면, 증여세 면제한도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세금이라도 많이 내서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도 있다고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소소한 일상-Daily > 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필로그 (0) | 2018.12.27 |
---|---|
첫 돌 (0) | 2018.12.18 |
분리불안의 시작 (0) | 2018.12.14 |
복직 준비 (0) | 2018.12.12 |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기 (0) | 2018.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