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첫 돌

gowooni1 2018. 12. 18. 11:07




아기 돌잔치 이틀 전 복직 후 근무할 부서가 결정됐다. 복직이 2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어디에서 근무하게 될 지 알 수가 없어 걱정하던 참이었다. 일찍 퇴근해서 아기를 데려올 수 있는 부서에 배치되는게 역시 가장 큰 관건이었다. 저녁시간이 다 된 무렵 인사 담당자의 전화를 받았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1지망으로 원하던 부서에 배치 되었음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인사담당자에게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전화를 끊었다. 휴, 이제야 한숨 돌린 것이다.


타이밍 맞게 메시지를 주고받던 친구에게 이 소식을 알리니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복직해서 몇 달간은 정말 사는게 사는 것 같지 않을거야. 일은 해야하지, 아기도 데리러 일찍 가야 하지, 게다가 어린이집에서 아기 아프다고 연락이라도 오면 바로 휴가 내고 가야 하고. 처음엔 정말 힘들어."

그녀는 아기를 낳은지 6개월만에 어린이집에 맡기고 바로 복직을 했었다. 그 아기가 벌써 5살이 되었다며 유치원에 보내려고 알아보다가 포기했단다.

"유치원은 방학이 한 달 이거든. 맞벌이 부부한테 유치원은 무리지. 할 수 없이 다시 어린이집 신청했어."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맞벌이 부부로서 아기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토로했다. 나로서는, 아직 와닿지 않은 현실이라 공감을 하기 보다는 새로운 정보에 놀랄 뿐이었다. 유치원이 방학이 한달인지도 처음 알았으며 아이가 커갈수록 키우기 힘든지도 잘 이해가지 않았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에 매몰되어 있어서, 돌만 지나고 아기가 자라면 조금 더 키우기 수월해질 줄 알았다. 그저 막연하게 말이다.


하소연을 담은 충고는 뒤로하고 일단 돌잔치에 집중해야 했다. 가족끼리 작게 하기로 했어도 준비할 게 많아서 만만치 않았다. 먼저 당일을 위해 아기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 했는데 이게 내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며칠전부터 갑자기 열이 오르더니 계속 콧물이 주르르 흐른데다 이가 나려해서 그런지 밤에 잠을 푹 못자고 자주 깨서 보챘다. 전날까지도 병원가서 약을 처방받아 먹이고 수시로 따뜻한 물을 먹였더니 다행히 당일 아침에도 평상시와 비슷한 컨디션으로 일어났다. 행사 당일은 정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기 짐가방들을 챙기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한 후 대여한 옷을 챙겨입고 행사 장소로 이동했다. 행사 시작 전 한 시간 가량 스냅촬영을 하기로 예정이 되어있었는데 이동 중 차 안에서 아기가 잠이 드는 바람에 약속 시간보다 좀 더 늦어져 버렸다. 섭외하기 힘들었던 사진작가는 이런 상황에 이미 익숙해있는지 무엇보다 아기 컨디션이 가장 중요하다, 오히려 좀 더 재우고 좋은 컨디션으로 찍는게 더 수월하다며 초보엄마 아빠인 우리를 잘 리드해주었다. 푹 자고 일어난 덕분에 아기는 촬영 및 행사 진행 도중에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잘 따라와주었다. 마지막으로 하객-이라 해봤자 양가 직계 정도라 몇 명 안되었지만-분들께 소감 한 말씀 하라는 사회자의 말에는, 출산 후 인큐베이터에서부터 지난 1년간의 기억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짧은 시간동안 살짝 감정이 북받쳤다. 무엇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키우겠다고 말하며, 작지만 할 건 다 하느라 간단하지 않았던 돌잔치를 마무리했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성과 처음 보는 것들에 피곤했던지 아기는 행사가 끝나자마자 우유를 마시고 금방 곤히 잠이 들었다.


돌잔치를 끝내고 나니 뭔가 큰 산을 하나 넘은 듯한 기분에 홀가분함이 몰려왔다. 그러면서 이제 시작될 새로운 생활에 정신이 쏠렸다. 아기는 갑자기 늘어날 어린이집에서의 시간에 대비해 한 주에 한 시간씩 시간을 늘리기로 했고, 분유량을 200에서 240으로 늘리되 횟수를 줄이기로 했다. 나는 이제 새로 배치된 부서 사람들과 통화를 하며 복직을 준비하고, 당분간 만나기 힘들 사람들에게 연락해 안부를 전했다. 연말이라 약속때문에 남편은 늦는 날이 많았고, 나는 아기를 보면서도 사람들과 통화하느라 아기와 놀아주는데만 집중하지 못했다. 아기는 말을 아직 못하지만, 엄마 아빠가 자신에게 신경써주는지 아닌지 귀신같이 알았다. 거실에 장난감과 놔두면 설거지할 시간만큼은 혼자 잘 놀던 아기가 금새 주방으로 와 다리에 매달리며 놀아달라고 앵앵거렸다. 책에서 본 건 있어서 '참, 요새 분리불안이랬지'라고 생각하며 안아주었지만 예전처럼 조금만 얼러주어도 꺄르르 웃게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제는 우쿨렐레를 켜줘도, 노래를 불러줘도, 책을 읽어줘도 보채기만 했다.


징징거리다가 겨우 잠든 아이를 자리에 눕히고 거실로 나와 장난감들을 정리하면서 가만 생각해보았다. 지금 새로 시작될 생활에 정신이 팔려있는 건 사실이지만, 육아휴직의 끝이 육아의 끝이 아님은 자명한데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이런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독박육아는 끝이야. 복직하면 남편도 그간 내가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뼈저리게 느끼겠지. 쌓여가는 집안일을 보면 내가 집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는지 알게 될거야.' 처음에 복직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어린이집에 오래 남게 될 아기때문에 마음이 아팠는데, 어느새 내 마음은 벌써 워킹맘이 되어 아기에게 쓸 신경이 분산되어 버린 듯했다. 육아에 대한 포커스도 예전과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엄마로서의 괜찮은 마음가짐에 대해, 부모가 제공해줄 수 있는 좋은 환경에 대한 책을 주로 읽었다면 요새는 아기의 행동반응을 이해하려는 책을 주로 읽었다. 언 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그때 그때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에만 급급해진 셈이다.


만약 나에게 당장 갚아야 할 은행 대출이 없다면, 이미 온전한 우리 소유의 집이 있고 정기적인 수입이 있어 경제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복직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거고, 아기를 5개월부터 어린이집에 안 보내도 되었을거고, 집에서 아기를 돌보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거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었어도 과연 그렇게 했을까? 그건 사실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자신이 없는 이상 복직해서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려 노력했을 거고, 어린이집은 조금 늦게 보냈겠지만 결국 보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집에서 아기만 돌보는데 집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중요한건 집에서 아기만 본다고 해서 훌륭하고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을거란 자신도 없다는 거다. 아직 나 자신도 갈고 닦아야 할 문제투성이 인격체라 인격 수양의 장이 필요한데, 회사라는 조직체에 나가서 많은 인간 군상들을 접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도를 넓혀야 아기에게도 나중에 해 줄 수 있는 조언의 기반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노산의 경계에서 엄마가 겨우 되었지만, 그래서 체력적으로 힘들고 지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는, 좀 더 젊은 시절에 엄마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거다. 젊었을 때보다는 지금의 내가 좋다. 지금의 내가 좀 더 성숙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곧 시작될 새로운 생활에 나도 그렇고 아기도 잘 따라와 주었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당부하기 위해 한 번 더 마음 속으로 되뇌이는 중이다. 육아휴직의 끝은 본격육아의 시작일 뿐이다.



'소소한 일상-Daily > 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필로그  (0) 2018.12.27
경제관념과 베푸는 마음에 대하여  (0) 2018.12.21
분리불안의 시작  (0) 2018.12.14
복직 준비  (0) 2018.12.12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기  (0) 2018.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