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다 되어가는 아기의 행동이 요즘 조금 이상했다. 어린이집에서도 잘 놀고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내는 아이였는데 최근 며칠 사이에 꽤 바뀐 것이다. 아프고나서 엄마를 많이 찾는가보다 싶었는데 그게 좀 심했다. 다른 사람들이 있어도 잘 노는 것은 여전했지만, 잘 놀다가도 엄마만 보면 징징거리며 달려들었고, 특히 자기 직전엔 아빠가 안아줘도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울어댔다. 오직 엄마한테만 안겨있어야 조용해졌다. 새벽에도 몇차례 깨는 것은 비슷했는데 예전에는 아빠가 가서 달래줘도 잘 잤던 반면 요즘은 엄마가 달래주지 않으면 온 몸을 뻗대며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무서운 꿈이라도 꾼 것일까 싶어 괜찮아, 괜찮아 하고 토닥여줘도 아기는 자기가 울고싶은 만큼 실컷 울어야 그치고 다시 잠이 들었다. 이게 며칠을 반복되다보니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신생아때만큼은 아니어도 거의 그때에 버금가는 수면장애가 왔다.
혹시 어디가 아픈가 싶어 먼저 병원에 갔다. 워낙에 감기에 잘 걸리던 아기라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합병증이 왔나 싶어 걱정스러웠다. 의사는 아이의 요즘 현상에 대한 나의 설명을 듣고 코와 목, 귀, 숨소리와 장소리들을 유심히 살피고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어디가 딱히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요. 목에 가래가 좀 끓긴 하지만 이것 때문에 그렇게 울었다고 보기엔 좀 어렵고요."
"무서운 꿈이라도 꾸는 걸까요?"
의사는 이런 비과학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거의 대답을 하지 않고 빙그레 웃는 타입이었다. 그러고는 콧물도 나기는 하지만 약을 먹을 정도로 심하진 않으니 이틀 후에 콧물 빼러 오라고 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처음 보는 아기의 반응에 당황한 초보엄마인 나는 좀 납득할만한 설명을 듣고 싶었다. 먼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생에게 물었더니,
"언니, 우리 애도 그래. 하긴 얘는 워낙에 아빠는 안중에도 없고 나만 찾는 게 유별나긴 했지만, 요새 그 강도가 더 심해졌다고나 할까."
라며 요즘이 그런 때니 너무 신경쓰지 말란다. 1년 먼저 아기를 낳은 친구에게도 물었더니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애도 언제부터인가 나만 찾더라고. 그게 언제부턴가 좀 사그라들기는 하는데, 요즘도 잘 놀다가 나만 보면 징징거리긴 해. 원래 애들이 그런건가봐."
비슷한 사례를 두 차례나 접하니 약간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기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요즘 들어 나의 육아 카운슬러가 되어버린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에게도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어머니. 제가 보니 아기에게 낯가림이 온 거 같아요. 요새 어린이집에서는 다른 선생님 다 있어도 저만 찾아요. 제 바짓가랑이만 붙들고 늘어지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가거든요. 워낙에 어린이집에서 잘 노는 아이라 괜찮은 편이지만 이 정도면 낯가림 맞아요. 원래 이런 때니까 너무 신경쓰실 건 없을 거에요."
그러면서 아기가 하도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바람에 몇 번이나 바지가 벗겨질 뻔했다며 재미있다는 듯 웃는데, 수많은 아기들을 돌보았을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과연 조금 더 납득이 갔다.
그러나 나는 납득을 넘어 아기의 심리를 이해하고 싶었다. 전반적으로 왜 그런지 이해하면 아기가 자다가 숨이 넘어가도록 자지러지게 우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요새 아기는 12시나 1시가 되면 꼭 일어나 뒤로 뒤집어지며 우는데 아빠한테는 가지도 않고 나에게만 왔으며, 내가 안아줘도 나를 양 손으로 쳐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었다. 엄청나게 무서운 꿈이라도 꿨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격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울다보니 잠이 다 깨서 다시 재우는데만도 한 두시간이 다시 걸렸다. 무거워서 잠깐이라도 내려놓으려 하면 또 뒤집어지며 우니 함부로 내려 놓기가 겁이 났다.
도서관에 가서 아이의 행동과 심리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말로 잘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인지 그런 종류의 책들이 많았는데 그 중 이자벨 필리오자의 책을 집어들었다. 지난번 '아이 마음 속으로'라는 그녀의 다른 저서를 읽었던 게 상당히 공감되었던 터라, 도움이 될만한 또 다른 내용이 실려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읽어내려갔다. '이 세상에 이유없는 말썽꾸러기는 없다'는 제목의 책으로 태어나서 만 5세까지 아이 행동에 대한 책이었다. 정말 조금 읽어 내려가니 '이거다' 싶은 문구를 발견했다. 이 책의 내용에 의하면 요새 우리 아기의 반응은 '분리불안' 증상이며, 보통 7개월부터 12개월 사이에 시작되어 10개월부터 15개월 사이에 절정에 이르렀다가, 만 세살에서 세살 반 사이에 사라진다 한다. 또한 분리불안에 의한 아이의 울음과 분노, 즉 아기가 잘 놀다가도 엄마만 보면 징징거리며 운다거나 하는 행동들의 이유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원천인 엄마를 믿고 이루어지는 단순한 긴장해소이며 그런 태도는 앞으로 몇 년간은 더 계속된다, 엄마를 보면서 아이는 그간 아무 내색않고 견뎌왔던 스트레스 상황을 요란하게 풀어내는 것이다, 등등의 내용이 적혀있는데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책을 빌려 들고 집에 와서 그 부분을 남편에게 읽어주었더니 남편도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이유를 알았으니 아기가 한밤중 집이 떠나가라 울지 않도록 해야했다. 내가 말했다.
"오늘은 한 번 아기랑 밤새 같이 자볼까 해. 아기가 밤에 깨서 눈을 떠도 엄마가 계속 옆에 있다는 걸 알면 그렇게까지는 않울지 않을까? 한 번 해보고 아니면 다른 방법을 또 생각해봐야지."
태어나서 지금껏 아기는 자기 방에서 따로 자고, 밤새 나와 남편이 번갈아가면서 옆에서 아기를 돌보며 잤다. 그러나 이젠 아빠를 봐도 별 소용이 없으니 엄마인 내가 전격적으로 투입되기로 한거다. 이 방법이 소용이 있을까 반신반의 하면서도, 아기가 자는 난방텐트 옆에 내가 자기 위한 온수매트를 이어 깔고 넓게 이불을 펼쳤다. 새로운 방 구성과 늘어난 이불가지들에 신이 났는지 아기는 이 이불 위에서 저 이불 위로 왔다갔다 하며 꺄르르 웃어댔다.
다행히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아기가 눈을 뜨려고 할때마다 토닥여주고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더니 자지러지게 우는 단계까지는 가지 않은 것이다. 물론 조금씩 앵앵거리는 거나 한번 깨면 잠이 쉽게 못 드는 것, 또한 밤새 아기를 돌보느라 잠을 거의 제대로 못잤다는 점은 비슷했지만, 일단 아기가 엄청나게 울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엄마가 옆에만 계속 있어줘도 괜찮았던 것을. 아기에게 괜히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왔다. 남편의 입장으로서야, 당분간은 밤에 아기를 돌보지 않아도 되니 어느 정도는 푹 잘 수 있겠지만, 아기가 아빠보다 엄마를 훨씬 의지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서운한 듯 했다.
나로서는, 눈 밑에 내려오는 다크서클과 천년만년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은 들지만 아기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간다는 점에서 어쩐지 새로운 감정이 차올라 더욱 사랑이 깊어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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