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육아일기 D+196 : 일상속 작지만 큰 행복

gowooni1 2018. 7. 3. 11:51

임신을 했을 때는 부정적인 생각이 태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어 영화도 밝고 즐거운 것만 보려고 꽤나 노력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계를 두다보니 생각보다 볼만한 게 없었다. 아이를 낳으면 꼭 보고 싶었던 영화를 잔뜩 봐야지 벼르고 있었으나 막상 낳고보니 볼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을 정신없이 보내고 이제 간간히 시간을 내서 조금씩 나눠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어찌되었는지 영화 취향이 편파적이 되어 영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영화는 기피하게 되었다. 안그래도 육아에 힘든데 조금이라도 내는 시간 기왕이면 에너지를 기분 좋게 충전하는 영화를 보는 것이 더 현명한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은 최근에 보았던 '신과 함께'를 보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이미 사후 세계를 다루는 영화라는 점에서 우울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막상 보다보니 에피소드들이 죄다 어두운데다가 슬프기까지 해서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었다. 그만 보고 싶은데 또 궁금하니 그러기도 힘들어서 겨우겨우 끝까지 보기는 하였으나, 보고나서 며칠간 영화의 잔상에 허덕여야만 했다. 평소 같으면 영화를 곱씹으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즐겼을텐데 그러기조차 싫어지는 것이었다. 아마 내 마음 한 켠에 있는 감정 조절 스위치가 '더 이상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면 안 돼' 하고 켜져서 내 감정 평온수치를 겨우 정상 범주로 유지시키는 것 같았다. 확실히 신경써야 할 하나의 커다란 미션-아이-이 주어진 상태에서는 감정의 수위도 조절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냥 힘든 순간들 속에서도 행복함을 느끼는 찰나가 있다. 최근에 내린 장마비로 꿉꿉하고 더운 나머지 아이 몸에 땀띠가 가득 올라왔다. 밤새 제습기를 켜서 습도를 낮춘 다음 쾌적한 실내공기 속에서 새벽녘 아이 옆에 누웠는데. 아이의 쌔근쌔근 잠자는 소리와 창 밖으로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소리가 너무나 평온하게 느껴져 그만 눈물이 날 뻔했다. 6개월 된 이 자그마한 아이와 새벽 빗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는 순간은 이 순간 뿐이니까. 물론 7개월의 아이, 8개월의 아이와 더 행복한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또 최근 행복감을 느낀 순간은 의외로 마트에서였다. 요즘 아이가 고집이 생겨서 유모차에 오래 앉아 있으려 하지 않아 마트 나들이가 조금 곤혹스러워지고 있었다. 아이는 날이 갈수록 무거워져서, 들면 허리가 아파 아기띠로 가급적 안 안아주고 유모차에 앉히려 하였는데 그 날 따라 너무 보채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아기띠로 안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아이가 오랜만에 보여준 그 표정이 아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모든 고집과 못마땅함이 없어지고 안겨 있는 그 순간 모든 만족감이 충족되어 순수하고 선망한 눈망울로 내가 말하는 입모양을 열심히 쫓는 천사같은 눈길. 그 눈빛은 3~5개월 때 낮잠을 재우기 위해 아기띠로 안고 우쿨렐레를 켜주며 노래를 불러줄 때 보여주던 눈빛이었다. 그 눈으로 한창을 바라보다 이내 스르르 감기고 낮잠을 자곤 했는데, 그때 당시에도 그 눈빛이 소중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최근에 다시 보니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직 아기가 안아달라고 할 때 많이 안아줘야겠다. 나중에 크면 안아주려 해도 도망간다고들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