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깊은 강 - 엔도 슈샤쿠

gowooni1 2014. 12. 14. 10:47

 

엔도 슈샤쿠는 '침묵'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그의 이름만 알았던 저는 '깊은 강'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마치 헤르만 헤세를 알기 위해 '유리알 유희'를 먼저 읽은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깊은 강'은 작가가 병과 사투하며 쓴 최후의 역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저는 작가 스스로가 가장 최고라고 여겼던 마스터피스를 처음으로 접했으니 그의 다른 작품을 읽었을 경우 실망할 가능성을 높여버린 셈이네요. 물론 작품성과 재미는 또 다른 차원이니까 아직 읽어보지도 않고 실망하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작품은 처음엔 단편소설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평소에 아내를 사랑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가 먼저 아내를 잃고 유언을 쫓아 환생한 아내를 찾아 헤매는 이소베, 대학시절 독실한 신자 오쓰를 유혹하여 욕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는 다시 버리는 나쓰메 미쓰코, 결핵에 걸려 세번이나 수술을 받고 죽을 위기를 맞지만 어쩐지 구관조가 대신 죽어주고 살아났다는 믿음을 갖는 동화작가 누마다, 전쟁 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전우 쓰카다의 자괴적 죽음을 알고보니 인육을 먹고 목숨을 부지하였다는 죄책감 때문임을 안 기구치. 이런 등장인물들의 단편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인도 바라나시 여행에서 한데 어우러집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같은데 다들 각자 찾아 해멜 목적을 갖고 인도로 온 것입니다. 이소베는 아내가 환생한 소녀가 인도에 살고 있다는 정보 때문에, 미쓰코는 신부가 되어버린 오쓰가 갠지스강가에서 힌두교도처럼 산다는 이야기 때문에, 누마다는 자신 대신 죽어준 구관조에 대한 보답 때문에, 기쿠치는 전쟁터에서 죽어간 전우들과 쓰카다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이 한없이 넓고 깊은 강가로 찾아들었습니다.

 


특히 클로즈업 되는 이야기는 바로 오쓰와 미쓰코의 이야기입니다. 바보같기만 한 오쓰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연민과 답답함을 동시에 일으킵니다. 여자한테 버림받고 다시 신에게로 돌아가 프랑스 리옹까지 가서 신부가 되려하지만 동양적이고 범신론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유일신인 그들에게 이단으로 찍히고, 여전히 예수를 믿고 스스로를 신부라 생각하지만 자신의 종교관을 받아들이는 힌두교의 분위기 속에서 불가촉천민처럼 옷을 입고 갠지스 강가에 다다르기 전 죽음을 맞이한 불가촉천민을 나르는 일을 하며 자신의 인생을 보내는 오쓰. 그의 신에 대한 거대한 믿음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어쩐지 관심을 끊어버릴 수 없는 미쓰코. 작가는 자신의 종교적 세계관을 오쓰와 미쓰코로 양분하여 묘사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제각각처럼 보이지만 전부 작가에게서 파생되어 나온, 즉 작가의 일부이자 분신들입니다. 결핵 때문에 세번이나 수술을 하고 마지막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누마다의 이야기도 실은 슈샤쿠 본인의 경험이고, 어머니 덕분에 세례를 받고 종교에 대해 깊이 공부했으면서도 파리로 유학가서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신에 대한 서양적 사고와 동양적 사고의 차이에 괴리감을 느끼는 건 오쓰를 통해 나타납니다. 그의 작품관이 지나치게 무겁고 종교적이라 이런 쪽에 흥미가 없다면 크게 즐길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명작 혹은 고전의 반열에 들만큼, 그저 한 세계를 이야기로 보여주는 것뿐인데도 여러 생각할 거리를 안겨줍니다. 무거운 주제인데도 금방 읽히도록 하는 것 역시 작가의 역량입니다.


그의 이름만 알았지 작가의 작품관이나 특징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던 저는 '깊은 강'을 읽으면서 계속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신의 존재에 대해, 종교라는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부분이 어째 비슷합니다. 물론 헤세는 기독교적인 관점을 좀 더 중시하다 나중엔 불교적인 관점으로 옮겨가고, 슈샤쿠는 가톨릭 세례까지 받은 사람이지만 유일신이 아닌 범신론적 종교관 때문에 불교와 힌두교에도 관심을 가진 듯 느껴집니다. 분명 다르다면 다르지만, '깊은 강'의 등장인물들이 인도여행을 하며 힌두교도들의 인생을 지켜보는 것마저 헤세의 '싯다르타'가 연상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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