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불륜

gowooni1 2014. 11. 8. 00:26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작품에 대한 분별력과는 상관없이 구매욕이 생겨서 문제다. 일단 구매하고 보기 때문에 복불복이다. 작가에게 처음으로 반해버렸던 작품만큼의 감흥을 주면 역시 잘 샀다고 생각되지만, 영 아니다 싶을 때에는 불발임을 인정하고 차기작에 기대하는 수밖에. 작가도 인간이므로 항상 모든 작품이 재미있을수는 없고 모든 작품이 독자의 마음에 들 수도 없는 일 아니겠냐며 어쩔수 없는 관용도 베풀어야 한다.

 

이번의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은 불발에 속한다. 작가가 점점 신비주의에 빠지는 모양으로 최근에 나오는 작품들은 심오함이 깃들여 있는데, 이 책은 심오함도 아니고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된 불륜 이야기를 그린거라면 제목이라도 이해하겠는데 이건 영 요새 사람들 기준으로는 수준 낮고 어설픈 바람 같고,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 그건 오직 사랑이다'라는 표지의 강렬한 문구로 뭔가 강렬한 관계가 전개될 듯 암시하지만 막상 펼쳐보면 그것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조용하고 도도하고 물가 높은 도시 스위스 제네바에 사는 서른 한 살의 린다는 안 가진게 뭔지 따져보는게 더 빠를만큼 모든 걸 다 가진 여자다. 매년 스위스에서 가장 부유한 100인에 손 꼽히는 능력있는 남편은 결혼한지 10년이 지났는데에도 여전히 아내만을 사랑하는 아내바보이고, 두 아이들은 너무 예쁘게 자라고 있으며 주요 일간지 기자라는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직업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에도 그녀는 점점 우울증에 빠져가고 있다. 이유는 이제 삶은 모든 것이 정해져버려서 더이상 열정을 가질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상태가 우울증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몸부림친다. 모든 것을 다 가졌고 남자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여자들에겐 질시의 대상인 자신이 우울해 한다는 것은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 우울증은 깊어가고 불면의 밤은 지속된다. 그럼에도 늘 모든 사람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상이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아야 하니 답답할 지경이다.

 

워낙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게 일인 그녀이지만 하루는 좀 특별한 사람을 인터뷰하게 된다. 16살 밖에 안 된 어린 시절 잠깐 만났던 남자 야코프 쾨니히는 이제 지역 의원으로 제네바에서는 상당한 권력을 지녔다. 그를 인터뷰 한 그날, 린다는 그의 사무실에서 무언가 일을 저질렀고 더 이상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말고 모든 것을 장악한다는 기분에 희열한다. 드디어 그녀의 인생이 뭔가 좀 재미있어 지는 것 같다.

 

린다는 자신이 그 상황을 장악하며 단순히 엔조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불륜의 경험이 많은 야코프 쪽이 엔조이였을 뿐 그녀는 점점 불륜에 빠진 일반여성이 되어 남자의 마음까지 장악하려 든다. 그와 연락이 되지 않을 때에는 그를 미워하고 그의 아내를 증오하고 어떻게든 복수하기 위해 집착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보상을 받는 날이면 사랑에 빠진 기분에 날아갈 것 같다. 이상하게도, 야코프와의 아슬아슬한 관계가 지속될수록 의무감뿐이던 남편과의 관계도 더욱 열정적이 된다.

 

작가가 말하는 '모든 것을 변하게 하는 사랑'은 많은 독자들이 생각하듯 불륜의 상대가 아니다. 불륜의 남자가 바람처럼 나타나서 지금까지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인생에 열정을 불사르고, 결국 겉껍데기 뿐이었던 자기 자신을 박차고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난다는 그런 진부한 설정은 아니다. 이 작품의 제목만큼 공감 안가는 부분은 바로 여기에 등장하는 완전무결한 남편이다. 이 남편이야말로 이 소설 아니, 이 세상에서 가장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남편이며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현실성을 떨어뜨린다. 어쩌면, 세상의 남편들은 대부분 완전무결한데 아직 현실을 잘 몰라 그저 시니컬하게 받아들이는 이 태도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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