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백은의 잭

gowooni1 2014. 9. 9. 09:37

 

 

 

졸려 죽겠는 눈을 부비고 '백은의 잭'을 다 읽은 후 출근한 다음 날 아침, 피곤함 속에서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며 감탄하며 있는데 옆 사람이 물었다.

"혹시 히가시노 게이고 좋아하세요?"

내 표정에 뜨악, 하는 감정이 그대로 표현되었는지, "그냥 어쩐지 좋아하실것 같아서요. 신작이 나왔다는데 예약 판매 한다네요."

 

어째서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할 거 같은 느낌인지는 아직도 당최 모르겠으나-그의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좋아하지만은 않는다- 백은의 잭에 대한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신작이 또 나온다는 건 반가운 사실이었다. 적어도 이 작품만큼 재미있었으면 좋겠지만.

 

백은의 잭은, 신게쓰 고원 스키장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이다. 여기엔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온다. 스키장 로프웨이 관리자 쿠라타, 패트롤 요원 네즈, 에루,키리바야시, 작년에 신게쓰 고원 스키장에서 아내와 엄마를 잃은 이리에 부자(父子), 정체불명의 부유한 노부부, 국제 스노보드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온 치아키 일행 등. 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스키장에는 협박 메일이 도착한다. 사흘 안애 3천만엔을 준비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설치한 폭탄을 폭파시키겠다는 거다. 협박범들은 친절하게도 설명을 해준다. 자신들은 이미 눈이 내리기 전에 슬로프 깊숙히 폭탄을 설치하였으며 유난히 눈이 많이 온 올해 같은 경우 절대 찾아낼 수 없으니 순순히 자신들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이다.

 

책임감이 투철한 쿠라타는 즉각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스키장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고 하지만 경영진의 생각은 그와 다르다. 안 그래도 적자를 겨우 면하고 있는 스키장 사업인데 여기서 운영을 중단해버리면 막대한 손해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할 거냔다. 이미 예약이 꽉 찬 객실에 대한 배상도 문제고, 일방적으로 예약을 취소당한 사람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해 오기라도 하면 그 피해에 대한 여파도 감당하기 힘들테지만,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는 스키장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향후 고객들이 찾아오지 않을 경우 그 피해는 이루말할 수 없이 커진다. 결국 범인의 요구대로 3천만엔을 준비해 전달하기로 한다.

 

범인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를 하였는지 돈을 직접 전달하는 방법까지 지시한다. 스키나 보드에 능숙한 자를 지목하여 이용시간이 지난 슬로프 위에서 돈을 가져갈 수 있도록 전화로 말한다. 첫번째 요구한 3천만엔이 잘 전달되자 범인은 친절하게도 폭탄이 설치되어있지 않은 지역을 알려준다. 쿠라타는 여전히 당장이라도 스키장 운행을 중단하자고 사장 및 경영진에게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 와중에 범인은 또 다시 3천만엔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내온다.

 

신게쓰 고원 스키장은 단순히 범인이 요구하는 돈만이 문제가 아니다. 많은 슬로프를 자랑하는 신게쓰 고원 스키장이지만 올해는 호쿠게쓰 구역을 개방하지 않았다. 작년에 호쿠게쓰 구역에서 인명사고가 나는 바람에 여성 한 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리에씨는 아직도 작년 사고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스키장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그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아하고 부유한 노부부도 유난히 호쿠게쓰 구역에 관심이 많다. 그 구역에서 스키를 타기 위해 왔는데 그곳이 개방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더욱 집착하는 모습이다.

 

범인에게 돈을 전달하는 건 스키와 보드가 능숙하고 누구보다 슬로프 지리에 빠삭한 패트롤요원들이 맡아 진행한다. 네즈는 첫번째 전달은 자기가 맡았지만, 단순히 돈 전달을 하는 건 큰 위험이 없다는 걸 파악하고 다음부터 에루가 전달하라고 한다. 에루가 전달하는 동안 네즈 자신은 범인을 추격해볼 심산이었다. 그러고나서 범인이 잠복해있을만한 곳에서 그를 쫓던 네즈는 경악을 한다. 에루로부터 떨어진 돈가방을 가지고 도주한 범인은 웬만한 실력의 보더가 아니면 지나갈 수 없는 협소한 숲길을 낮은 자세로 활강하다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범인이 사라진 절벽 아래에는 깜깜한 계곡이었고 건너편까지는 30미터는 족히 되는 구간이었다. 범인은 이 높이를 날아 저편으로 건너갔고, 상당한 실력자가 아니면 도저히 시도할 수 없는 거리였던 것이다.

 

이제 점점 더 범인이 누구인지 모두의 궁금증이 거세게 일고 있는데, 돈을 무사히 건네받은 범인으로부터 또 한 번의 이메일이 도착한다. 이번에도 돈을 잘 받았으니 폭탄이 설치되어 있지 않는 지역을 알려주겠지만 전과 달리 추격자의 낌새가 있었기 때문에 거래를 중지하려고 했다며, 한 번만 더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엔 거래정지라고 판단하고 폭발물 스위치를 누르겠다는 내용이다. 신게쓰 고원 스키장에서 열릴 국제 보드대회의 개막일은 점점 앞으로 다가오는데, 대회장 설치예정 구간에는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예정대로 설치를 진행하자니 폭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설치 진행을 지연시키자니 대회 시작 전까지 공사를 완료할 지 미지수인 상태에서, 범인으로부터 3번째 협박 메일이 온다. 이번에는 4천만엔이다.

 

과연 스키장 폭파 협박의 진범은 누구일까? 이리에씨의 아내를 죽이고 간 사람은 누구일까? 이리에씨는 누구인가? 수상한 노부부는 누구이고 호쿠게쓰를 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궁금증이 아우러져 소설의 끝까지 달려나가게 만드는 최고의 묘미를 지닌 작품이다. 더군다나 한여름 더위에 지쳐 있을 때 한겨울의 슬로프를 헤치는 듯한 시원한 분위기까지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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