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그들의 이별에 대처하는 나의 방식

gowooni1 2013. 12. 1. 01:01

 

 

 

그녀는 언제나 금방 사랑에 빠져버려, 보는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보기엔 그 사진작가도 그렇게 쉽게 빠진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소개를 받았을 당시만 해도 그닥 오래 지속되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용케 감정이 지속되는 편이라 제법 진지한건가? 하는 마음이 들기에

 

"그렇게 좋으면서 왜 함께 할 생각을 하지 않는거야?" 라고 물으면,

 

"지속되지 않을 걸 잘 아니까 지금 이 순간에 더 사랑하려 하고 최선을 다 하려 하는 거야. 언젠가 헤어지겠지만 있을 때는 잘 해줘야지."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감정은 빠질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끝났다. 그는 그동안 함께 했던 사진들을 사진작가답게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이메일로 보내왔고 마지막엔 시와 같은 편지까지 곁들여 작별을 고했다. 그녀 역시 그가 보내온 메일을 읽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더니 샤워를 오랫동안 하고 나서는 꽃단장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버렸다. 아니 둘 사이에는 이별의 상처를 오랫동안 보듬어줄 시간과, 슬픔을 보듬어야 할 섬세함은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인간마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너무 달라서 나는 그만 내가 그 둘의 이별을 추모해주어야 할 것 같은 의무심마저 들었다.

 

세상 모든 연인이 헤어지는 이유와 방법이야 각양각색이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발견한 공통적인 요소들을 섞어 추측하자면 이렇다. 먼저 이별을 고한 건 그녀였지만 이별을 고하도록 분위기를 유도한 건 그였다. 그에게 그녀와 헤어져야겠다고 마음이 들게 만든 건 절대적인 신뢰를 주지 못한 그녀였지만 그녀가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한 건 사람과의 관계에 많이 다쳐 몸을 사린 그에게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는 여자들한테 많이 데여봤고 그녀에게도 데이지 않을까 몸을 사렸는데 마침 그녀는 그런 기질이 없지는 않은 여자였다,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자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고 그는 그걸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사랑은 빠질 때와 같은 광속으로 끝나버렸다.

 

늘 영속적인 것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사랑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비단 사랑방식뿐이겠냐만). 게다가 그들 본인은 소모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감정적 소모를 나 혼자 지나치게 소모하고는 손해보는 기분마저 드는게 문제다. 이러한 감정누수를 겪지 않으려면 다시는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런 상황이 내 의지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어쨌거나 나만큼은 연인이든 친구든 동료이든, 모든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평온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주는 사람, 극단적으로 명랑하거나 유쾌하거나 재미있지는 않아도 늘 차분하고 따뜻하고 신뢰감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만큼은 확실하게 많이 했다. 덕분에.

 

문득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소중한 감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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