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까딸루니아 내전에 참가한 조지 오웰은 그 경험을 잊지 않고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를 비판, 비난, 조소, 풍자하는 글들을 써댔는데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동물농장과 1984이다. 동물농장은 사람을 동물로 비교해 풍자하는 작태가 하도 기이하고 재미있고 경쾌하기까지 해서 즐거운 반면 1984는 좀 심각하고 어둡고 지루하고 답답하다. 1947년 정도에 집필하기 시작한 조지 오웰은 1949년에 이 작품을 탈고한다.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 속에 총성이 난무하고 공산당이 몇몇 국가권에서 집권을 하고 세계 정세는 어지러웠던 시대다. 오웰은 세계가 전체주의와 공산당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전제 하에 그 당시로부터 30년 후의 미래를 가정하여 1984라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때는 1984년. 오세아니아, 아시아, 아메리카 라는 세 개의 거대한 전체주의 국가가 지구상을 다스린다. 윈스턴은 40살이라는 중년의 남성으로 역사를 조작하는 일을 하는 당의 훌륭한 일원이다. 위에서 내려온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고, 당의 총수 빅브라더에 충성하고, 주어진 음식배급에 감사하며 다람쥐 쳇바퀴 구르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사실 윈스턴은 어렸을 적, 빅브라더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의 시절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온 사방에 자신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도 없었고 도청장치도 없었고 마음껏 책을 읽을수도 있었고 맛있는 초콜릿과 커피를 돈만 있으면 마음껏 먹고 마실수도 있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것 같다. 자기만의 생각을 할 시간도 충분했고 그걸 표현하는 것도 자유로웠다. 언제부터인가 그 모든것이 빅브라더의 눈이라는 텔레스크린 아래 금지되긴 했지만 그는 그 시절이 존재했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윈스턴은 당에 무조건적으로 맹세하고 복종하는 다른 사람들이 경멸스럽다. 당에 충실해보이면 보일수록 그 사람에 대한 혐오도는 더욱 높아졌다. 자신의 생각이라고는 없는 자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런 생각이 굉장히 위험하며 만약 생각에 잠긴 것이 텔레스크린을 통해 들키기라도 하면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하루 아침에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속에서조차 그는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윈스턴은 자신이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현 전체주의 사회체제에 반대를 하는 자라는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작은 반항으로 텔레스크린 사각지대에서 일기를 쓰긴 하지만 그것조차 굉장히 위험한 짓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러던 어느날 윈스턴은 평소에 그토록 혐오하던 한 젊은 여성으로부터 우연을 가장한 쪽지를 받는다. 사랑해요. 누구보다 당의 명령에 절대적 복종을 맹세하고 당에서 시키는 거라면 맹목적 열정을 가지고 활발하게 수행하던 줄리아로부터 그토록 개인적인 감정이 담긴 쪽지를 받다니. 그건 엄청난 위험을 각오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당은 사랑이라는 개인적 감정을 철저히 무시했고 남녀가 잠자리를 하는 것은 사랑이 배경이 아니라 당을 위해 충실히 노동을 이행할 당원을 낳는 거룩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고 사람들을 세뇌시켜왔단 말이다. 윈스턴은 줄리아에게 강하게 끌렸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자신만이 개성을 지닌 인간다운 인간이라 생각해왔는데 알고보니 줄리아는 인간다울뿐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기까지 했다. 줄리아가 열성 당원처럼 행실하는 이유는 오직 그렇게 살아가는 게 자신의 신상에 이롭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윈스턴이 사상과 행동의 불일치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편이라면 줄리아에게 있어 언행불일치는 세상을 편히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하나의 처세술이었다. 당에 진정 충실하지 않고 위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에 냉소적이어도 그건 겉으로만, 텔레스크린 앞에서만 표하지 않으면 되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그들의 사랑놀음도 사상경찰에 발각됨으로써 끝이 난다. 윈스턴은 자신이 그동안 당의 철저한 감시 아래 살아왔던 걸 알게 된다. 사각지대라고 생각했던 장소에서 일기를 썼던 것도 줄리아를 만나 사랑을 나눴던 것도 전부 당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당은 빅브라더를 증오하는 윈스턴에게 사상을 바꾸는 고통을 가한다. 엄청난 시간과 고문 아래 윈스턴은 서서히 당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당원으로 변해간다. 한 번 사상범은 영원한 사상범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이제 윈스턴은 진정으로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된다.
작품 전체적으로 흐르는 엄청나게 암울한 분위기가 끝까지 지루하게 이어진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어두운 작품을 길게 써댄 걸까, 작가의 정신상태에 대한 의문이 피어오른다. 용케도 이런 작품을 쓰며 2년을 살아왔구나. 1984를 쓰던 당시 작가는 아내도 잃고 극도로 궁핍한 상황에 놓여있었고 건강도 악화되었다고 하니 과연 이 작품이 괜히 나온게 아니었다 싶지만, 결과적으로 1984년 작가의 생명력을 단축시켰을 것이다. 탈고후 1년 뒤인 1950년에 오웰은 최악으로 치닫은 삶의 조건에서 얻은 폐결핵으로 죽고 만다. 1984가 동물농장처럼 조금이라도 유쾌하고 풍자적이고 덜 심각했다면 그도 조금은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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