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여수 밤바다-1

gowooni1 2012. 5. 25. 18:27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들으면서 생각한 게 어린 것들이 이런 노래를 잘도 불렀구나 였는데, 여기엔 이십대 초반이 웬만해선 느끼기 힘든 애잔함 깊은 우수랄까 그런 게 절절이 녹아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그건 버스커버스커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한테나 통용되는 얘기고 안 맞는 사람들은 지루하다거나 별로랬다) 어쨌거나 그런 감동을 느낄 수 없다는 건 안타깝지, 오히려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벚꽃 엔딩부터 서울사람들까지 무한반복으로 듣다가 문득 떠오른 건데 혹시 이들이 여수 엑스포를 노리고 여수 밤바다란 노래를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왜 하필 여수 밤바다지? 인근 도시를 대자면 고흥 밤바다도 있고 광양 밤바다도 되는데. 음, 그런데 왠지 어감은 여수만큼 좋지가 않다. 이미 세뇌된 덕분인지도 모르겠지만 여수라는 단어가 주는 향수는 다른 도시의 단어들이 따라올 수 없었다. 그런 향수보다 상업적 성공을 더 노렸다고 해도 어느 정도 이들의 계략은 성공적인 셈이다. 적어도 나 하나만큼은 덕분에 여수밤바다에 대한 환상이 더 커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연일 엑스포에 사람이 없다는 방송을 보면서 동정표를 얻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언론 플레이는 아닐까 미심쩍었는데 기차표 예매를 하면서 심증은 물증으로 변했다. KTX는 진작 매진이고 무궁화호도 열차 시간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런 식인데도 사람이 없다면 인프라의 미진도 한 번 의심해 봐야했다. 직접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으니 삐딱한 시선은 이쯤에서 멈추고 일단 즐거운 마음으로 모처럼의 여행을 만끽하기로 했다. 여수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숙박업소가 엑스포 특수를 노려 엑스포 요금이란 미명하에 바가지를 씌운댄다. 뭐 이 정도야 예상했던 일. 그 시골 남쪽 마을에서 언제 한 번 그런 돈벌이를 또 만나보겠냐는 말이다. 여수 시내버스가 엑스포 기간 동안 전부 공짜랜다. 와우. 멋진데. 여수시가 돈 좀 썼겠어. 그랬더니 누군가 왈, 그게 전부 세금이지 뭐. 하긴. 맞는 말이다. 이박 삼일 동안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생각해보니 향일암 하루 엑스포 하루 보고 집에 올라오면 딱 맞을 일정이라 그렇게 계획하고 기본적인 짐과 기차 안에서 보낼 다섯 시간을 달래줄 책 한 권, 여수 밤바다 외 다른 버스커 노래들을 담은 엠피쓰리 등을 잘 챙겨서 새벽 같이 일어나 기차를 탔다.

여수는 몇 번 가보긴 했는데 거기가 내게 있어 좀 더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버스커버스커 노래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으로 배낭 메고 훌쩍 떠나기 시작한 짧은 여행의 첫 번째 행선지가 거기라서다. 팔 년 전 밤기차를 타고 여수역에 떨어진 게 새벽 네 시 정도 였는데, 진짜 무서웠다. 말만 시지, 발전 안 된 도시라 역에 조명은 다 꺼져있었고 도로를 비추는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는데 불도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택시 아저씨한테 인근 가장 가까운 피씨방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 첫 버스가 다닐 때까지 한 시간 가량 컴퓨터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그랬던 기억에 밤기차는 고생길이라는 등식이 뇌리에 성립되어 있어 아무리 꼭두새벽에 출발하더라도 잠은 편하게 자야한다는 내 모토와 달리 두 혜들은(이름에 혜가 붙어있는 일행들. 혜원, 혜투로 칭한다) 뭔 밤기차에 대한 로망이 있는지 자꾸 밤기차를 타고 훌쩍 떠나곤 했는데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벌써 이들은 새벽에 여수엑스포역에 떨어져 도시를 둘러보고 있었다.

잠도 잘 만큼 자고 음악도 들을 만큼 들었는데 다섯 시간의 위력은 대단했다. 결국 아껴보려던 책을 꺼내 들었다. 최인호가 쓴 제왕의 문이라는 장편소설인데, 이 사람이 쓴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아서 궁금증에 산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이라기보다는 무슨 개인적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은 전개가 차라리 역사 기행문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게 무슨 픽션이야, 라고 반감은 좀 들었지만, 그게 이 작가 스타일일수도 있고 또 소설이라는 것이 원래 민간에 떠도는 논픽션에서 극적 요소가 가미돼 발전된 장르니 반드시 허구여야만 한다는 법칙도 없는 거다. 논픽션이면 어때, 재미만 있으면 됐지. 게다가 다루고 있는 주제도 흥미롭다. 고구려 전성기를 누리던 광개토대왕 시절의 것으로 발견되는 유물들에서 일관적으로 발견되는 #표식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작가의 지적, 신체적 탐험이 소설의 주요 전개 내용인데 작가의 박식함과 그걸 이해할 수 있는 내 박식함을 동시 감탄할 수 있는 약간 나르시시즘적 즐거움마저 은근히 안겨주니 논픽션이나 문체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하기엔 어려웠다. 작가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호우총에서 발견한 호우명 그릇을 보고, 그리고 거기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문양을 보고 이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고구려 옛 땅인 만주, 지금의 중국으로 건너가야만 함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사명처럼 생각했다. 일찍이 전성기를 누리던 백제가 근초고왕 때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부흥했지만, 한 세기 후 판국이 뒤바뀔 하늘의 인재가 고구려에 뜬다. 광개토대왕은 장수왕에게 한성 함락의 기반을 마련해준 다음 세상을 뜨고 장수왕 거련은 부왕의 뜻을 받들어 더욱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정복사업에 뛰어든다. 도림이라는 승려와 짜고 쳐서 개로왕의 심복으로 나라를 쉽게 칠 수 있도록 스파이 작전을 펼치는데 어떠한 경유로 백제가 위례성을 버리고 웅진으로 천도할 수밖에 없었는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쏠쏠한 재미를 주는 중 드디어 여수 엑스포역에 도착했다.

새벽에 도착한 두 혜들은 일출을 보고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의 오동도를 만끽한 다음 진남관에 다녀왔단다. 음, 그렇다면 이번에 오동도는 포기해야겠군. 몇 번 가봤으니 괜찮지만 사진 한 장 없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다면 진남관은? 또 가자고 하니 두 명이 딴 데 가야 한다고 아우성을 친다. 혼자라도 다녀와?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니 그것도 그것대로 좋지. 미리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에 들러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근데 웬 걸. 게스트 하우스 근방이 바로 진남관이었다. 앗싸, 진남관의 은은한 야경을 즐길 수 있겠다.

맛있고 지역특색 물씬 나는 점심을 먹자고 이구동성으로 뜻을 같이 해 두고도 결국 우리가 선택한 건 미스터 피자. 미스터 피자가 있는 걸 보니 여기 중앙 시장이 여수에서 가장 번화한 동네인가보다. 시골 도시가 발전하는 양상은 어디든 비슷비슷하다. 피자를 먹으면서 창 밖을 보던 내가 지금 여수가 꼭 십 년 전 용인시내 같다고 하니 혜투가 십 년 전 춘천시내와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응수했다. 시내에 하나 밖에 없는 피자가게 같은데, 그래서 손님은 많은데, 아르바이트생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친절하네. 이렇게 사람 많고 주문사항 많은데 짜증 한 번 안 내고 웃는 얼굴이잖아."

"혹시 여기 사장 악덕업주 아냐? 알바생 비용 아끼려고 한 명만 고용한 걸 수도 있어."

"어쩌면 저 애가 사장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계속 웃는 거야."

"어쩌면 사장 딸이거나. 그래서 알바 쓰지 말고 자기 월급 두 배로 달라고 했을지도 몰라."

각자 시나리오를 쓰면서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보편적 음식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 길을 나섰다.

짐을 맡길 때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여잔데, 젊고 예뻐서 흥미로웠다. 어떻게 하다가 젊은 나이에 게스트 하우스를 차리게 되었지?) 향일암 가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더니 삼사십분이면 충분하댔다. 그런데 문제는 버스가 안 온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두세번 로테이션이 되고 나서도 이놈의 111번은 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버스 간격이 한 시간에 한 대란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삼사십분밖에 안 걸린다는 얘기만 해줬지 버스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얘기는 안 해줬다. 결국 우리가 예상한 한시간 삼십분을 더 걸려 향일암에 갔는데, 111번 버스 아저씨는 나홀로 레이스를 즐기는 부류의 드라이버라, 카트라이더를 연상케 하는 돌산의 꼬불꼬불하고 한적한 도로를 마치 페라리를 모는 기분으로 버스운전 하시는데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엎어질까 불안불안하여 온 몸에 긴장이 안 들어갈 틈이 없었다. 나중엔 멀미가 날 지경이라 아무리 파란 여수 낮바다의 찬란함을 보아도 감흥은커녕 두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오는 길이 깜깜하다.

향일암 들어가는 입구는 예전과 같았다. 가파른 언덕길에 양가로 죽 늘어선 갓김치를 파는 가게들이 특유의 냄새를 풍긴다. 윽. 난 이 냄새가 싫다. 쾌적할 수 있는 암자 가는 길을 어째서 이리 아름답지 않은 후각으로 망쳐놓을 수 있는지. 천년의 고찰로 들어가는 길이라면 좀 더 정갈하고 경건한 마음을 갖을 수 있게끔 상업의 손길을 좀 막아주면 안되나. 그러나 유동인구 많은 길목에서 그런 걸 바라는 것이 허무맹랑한 소리다. 어쨌거나 옛날과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을 거라 추측되는 사람들이 똑같은 음식을 팔고 있는데 차라리 변하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전 화재로 소실된 향일암 대웅전이 궁금하던 차에 다른 것은 변한 게 없으려나 염려스러웠는데 아무튼 입구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입장료를 구입하는 곳 앞에서 키위주스를 하나 사들고 높다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째서지? 옛날만큼 계단이 많은 것 같지가 않다. 팔 년 전에는 끝도 없이 많았던 거 같은데. 몰래 숨겨놓은 아지트를 찾아 들어가는 기분으로 바위들 사이를 지나 향일암으로 들어가는 중, 이래서 화재 발생시 소화가 늦었나 싶기도 했다.

돌벽 사이를 누비고 돌계단을 오르고 낮은 돌천장을 지나면 드디어 향일암 대웅전과 함께 넓은 앞뜰과 그 앞으로 수려하게 펼쳐진 남해바다가 세속이 아닌 것처럼 두둥, 등장한다. 백제 의자왕 4년(659)에 원효대사에 의하여 창건됐다는 향일암. 천오백년 전 고승이 위치는 또 어찌 귀신같이 알고 이리 아름다운 절을 지어놨는지. 백제의 꽤 영향력 있는 승려께서 통일신라 시절 유학가려다 돌아와 파계를 하고 신라공주와 잠을 자 설총을 나았으니 어쩌면 이 원효라는 스님도 상당히 정치적인 감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웅전 위쪽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있는 관음전 앞쪽 절벽 아래 너른 바위가 하나 고요하게 있는데 바로 원효대사 좌선대다. 명상이나 참선을 할 줄 몰라도 한 번 쯤 저 위에 아무 생각없이 앉아서 그저 잔잔한 물결 움직이는 바다만 하루종일 바라보고 싶어지는 곳이다.

내려오는 길에 색색깔의 막걸리빵 같은 걸 만들어 파는 집이 하나 있었다. 마침 출출한 시간이기도 하고 또 여기까지 왔는데 동동주 한 잔의 묘미를 놓칠수 없지. 찐빵의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보리개떡이란다.(떡이 아니라 빵 같은데) 하나만 달라고 하니까 색색깔로 하나씩 세개 묶어 삼천원에 파는거란다.(거의 강매 수준) 동동주 한 잔씩 시키고 강매한 보리개떡을 먹으니 역시 그냥 찐빵이다. 막걸리 빵보다는 콩도 섞여 있고 술 냄새도 없고 한 게 좀 더 영양가 있는 음식 같아 그럭저럭 맛있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저녁에서 밤 무렵으로 넘어가는 여수 바다를 여수 밤바다를 틀어놓고 무한정 들으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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