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영화-MOVIE

티파니에서 아침을 Breakfast at Tiffany's, 1961

gowooni1 2012. 5. 6. 01:37

 

 

이른 새벽, 뉴욕 5번가를 달리던 택시가 멈추고 여자가 내린다. 머리를 높이 틀어올리고 검은 드레스에 선글라스를 쓴 여자는 문이 열리지 않은 티파니 진열대 앞에 서서 빵과 커피를 마시며 보석을 한참 들여다본다. 구경에 이내 만족했는지 여자는 모퉁이를 돌아 동쪽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쏙 들어간다. 아파트 앞에서 죽치고 앉아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구애자 중 한 명은 보기좋게 퇴짜를 맞고 돌아가고, 할리는 겨우 휴식을 취하며 잠이 든다.

 

 

곤히 자고 있는데 아파트 벨소리가 울리고 할리는 현관을 열어주려고 문 밖에 나가다 방금 로마에서 도착한 한 남자와 만난다. 오늘부로 그녀 아파트 윗층에서 살려고 하는 그 남자 조지 페퍼드는 전화좀 빌려쓰자는 부탁을 하고 할리는 흔쾌히 집 안으로 남자를 들인다. 할리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페이스로 재잘거리며 외출준비를 하는 그녀를 보면서 폴은 금방 그 매력에 빠져들고 언제 식사나 한 번 같이 하자며 그녀에게 잠정적 애프터를 신청한다.

 

 

밤이 되자 할리는 아파트 창문 밖을 기어나와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조지가 보내는 일상의 단면을 훔쳐보고 만다. 돈 많고 나이 많고 적당한 매력도 있는 여자의 기둥서방으로 살아가면서 기본적인 삶의 요건을 충족시켜 살아가는 조지. 하지만 그녀라고 해서 그런 조지와 다를 바는 없다. 할리 역시 돈 많은 남자의 아내가 되어 신분상승을 이루는 것이 뉴욕에 온 첫번째 목적이자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처음부터 각자 살아가는 방식을 들킨만큼, 할리와 조지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조지는 단편집을 낸 작가이고 장차 소설을 써 좀 더 확실한 작가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가진 젊은이다. 다른 작품은 없냐고 묻는 할리에게 '내 재능을 스토리 따위에 낭비할 수 없어 더 쓰지는 않았지만 노벨을 구상하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그런 그가 흥미롭기는 해도 역시 할리에게 그는 수컷으로서의 타깃대상이 되지 못한다. 젊음이 주는 미래와 증빙되지 않은 재능만으로는 할리가 원하는 부와 상류계급으로의 진입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끌리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애초에 가능성을 배제하는 관계는 편안함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강도높은 끌림을 제공한다.

 

 

아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상류계층을 꿈꿀수밖에 없던 할리의 과거도 드러난다. 14살때 먹을 것을 훔치고 가난하게 살던 그녀가 아버지 뻘의 남자와 결혼해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으면서 살아왔던 것, 그러나 나이 많은 시골 수의사의 아내로 만족하기엔 야망이 너무 커 홀로 뉴욕으로 건너온 것, 이름을 바꾸고 과거를 잊기 위해 살아가는 그녀지만 자신이 진짜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 등 매력적이기만 한 줄 알았던 할리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때마다 조지는 측은함과 함께 사랑도 키운다. 둘의 마음을 서로 확인한 날 조지는 자신의 연인이자 물주에게 스타일리쉬한 이별을 부탁하고 오직 할리에게 전념하기로 결심하지만, 어쩐일인지 할리는 더욱 매정하게 그를 대한다.

 

 
할리는 브라질 갑부에게 구애를 받는 중이었고, 자신이 생각하는 상류계층으로의 진입을 보장해줄 수 있는 건 조지가 아니라 갑부라고 확신했다. 조지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조지에게서 오는 감정을 외면하고 할리는 남미에 가기 위한 준비를 실행에 옮긴다. 조지는 이미 할리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았고 그렇게 둘은 마음만 확인한 상태에서 몇 달 간의 시간을 흘려보낸다. 브라질에 가기 전날 할리는 조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그를 저녁에 초대하고 둘은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마지막에 할리가 마약 사건에 연루되고 무죄가 증빙된다 하더라도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던 브라질 갑부에게 있어 할리는 더 이상 어울리는 배필감이 아니었다. 모든 것에 버림받고 모든 것을 내쳤을 때 결국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있는 건 조지. 둘은 그렇게 다시 한 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