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인가 강도인가 혐의로 육개월 복역하고 나온 드리스는 갈 곳이 없다. 모처럼 집에 들어갔더니 동생들은 반가워하기보다 말도 안 듣거나 무시하고, 반 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무슨 낯짝으로 들어오냐며 엄마한테 쫓겨나 버렸다. 그나마 드리스를 반기는 건 늘 거리에서 함께 어울리던 부랑자 친구들. 그래도 그들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나 사람이나 일이라도 있지, 드리스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튼 먹고는 살아야 했으므로 구직에서 세 번 짤리면 생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사회 복지제도라도 이용하기 위해 면접을 다니기 시작했다. 전신마비 장애자이자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갑부 필립의 24시간 도우미 선발 면접장에 간 것도 그러니까 단순히 구직면접에서 짤렸다는 사인을 받기 위해서였던 거다.
처음부터 대놓고 다짜고짜 짤리기 위해 왔으니 서명해달라는 드리스에게 필립은 그만 관심과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에 들어서 직장 한 번 잡아보려는 그렇고 그런 수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드리스가 단연 돋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아무리 백 번 봐준다 해도 객관적으로 드리스는 필립처럼 손 많이 가는 사람의 섬세한 도우미가 될 만한 자질이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싫다고 방방 날뛰는 드리스 본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필립은 2주 동안 자신의 도우미 수습 기간을 견뎌보라고 제시한다. 그걸 견디면 해고 용지에 서명을 해주겠다는 조삼모사격 감언이설까지 동원하면서 말이다. 필립의 속내를 알 길은 없지만 그런 드리스의 마음을 돌려 놓았던 것은 궁전같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화려한 집 안에 배정된 드리스의 숙소, 그 안에 전용으로 딸려 있는 고급스런 욕실과 욕조였다.
그렇게 드리스는 자신이 평생 터치해보지 못할 상위 1퍼센트의 최고 갑부이자 세상 0.1%도 안 될 전신마비 장애자와의 생활을 시작한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만큼 둘이 겪는 문화적 격차는 매번 일어난다. 하얀 배경에 빨간 물감이 흩뿌려진 그림을 4만 유로가 넘는 돈으로 구입하며 자신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라는 필립의 말에 또라이라며 자기가 종이에 코피를 쏟아도 그보다 낫겠다는 드리스. 격조 높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도 필립이 가슴 깊이 느끼는 감흥보다 프랑스 전화교환국 연결음을 떠올리거나 톰과 제리 배경음악이라 안다며 즐거워하는 드리스. 필립이 펜팔 상대에게 보내는 시적인 문구들에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차라리 전화를 걸어 몸무게가 몇 나가냐고 물어보라는 드리스. 그게 바로 그들이 부딪혀가는 방식이고 서로에게 길들여가는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필립을 즐겁게 만든 건 드리스가 제공하는 일상적인 즐거움이다. 애초에 드리스에게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 없었는데, 남들은 그게 사람의 질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폄하했지만 오히려 필립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초콜릿을 달라는 필립에게 빼앗아 먹어보라며 놀리고, 핸드폰이 울리는데 무심코 건네주며 받으라고 한다. 가슴 답답해하며 숨도 못쉬는 필립을 가엾어하기 전에 휠체어에 올려놓고 거리로 나가 파리의 새벽을 산책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환자라면 몸에 안좋으니 하지 말라고 해야 할 담배마저도 서슴없이 빨라고 한 두 모금 내어 준다. 보통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일상적 즐거움, 필립이 전신마비가 되기 전에 실컷 느꼈을 삶의 재미를 다시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연민없는 드리스였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처음 계약했던 2주가 지나고 드리스는 정식으로 필립의 도우미가 된다.
아직 혈기왕성한 드리스가 가장 궁금한 건 필립이 과연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있는가, 성생활이 가능한가였는데 놀랍게도 그게 아직 가능하다는 필립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 문제는 상당히 컴플리케이트했다. 전신마비인 필립이 성적으로 흥분을 한다는 건 순전히 정신력으로만 조절할 수 있는 문제같았기 때문이다. 다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그에게 다행스럽게도(?) 아직 성감대가 남아있었으니 그건 바로 귀. 만약 그렇다면 필립도 다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수도, 결혼할 수도 있는 것이었고 그런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 드리스는 자신의 저돌적 무모함을 밀어붙여 필립과 그의 펜팔 상대를 만나게 한다. 드디어 필립과 상대 여자가 만나는 날, 심하게 긴장한 필립은 약속 장소에서 기다린 지 오 분도 되지 않아 그만 나와버리고 만다.
와중 드리스의 집에는 알 수 없는 사정이 생기고 동생이 드리스를 찾으러 필립의 집까지 온다. 동생의 방문으로 인해 처음으로 드리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필립에게 꺼낸다. 자신의 어머니는 사실 숙모라는 이야기, 자식이 없던 삼촌 내외가 어렸을 적 그를 튀니지에서 데려왔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 이후로 삼촌은 죽고 숙모는 자식을 계속 나아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동생들이 생겨버렸다는 이야기, 어쨌거나 하위 1%를 구성하는 사회 계층으로 어렵게 살아왔던 이야기 등등. 필립은 드리스에게 이제 자신이 그를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고 하며 약속대로 해고 통지서에 서명을 해 줄 것이고 젊은 그의 인생을 앞으로도 즐겁게 살아가라며 그를 보낸다.
너무 한 사람에게 길들여졌던 것일까. 필립은 그 이후로도 많은 도우미를 들이지만 도저히 드리스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일상적 즐거움을 박탈당한 건 전신마비 이후로 익숙해졌던 거라 생각했는데 재박탈 당한 고통도 처음 박탈당했을 때만큼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필립은 점점 삶의 재미나 의미를 잃고 괴팍한 늙은이로 변해간다. 예전처럼 말쑥하게 꾸미지도 않고, 펜팔로 다른 누군가와 감정 교류도 하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으며 웃음기 없는 얼굴로 하루 하루 그저 버텨나간다. 그런 필립의 상태를 안타깝게 여긴 집사 이본이 드리스에게 연락으로 SOS를 청하고 드리스는 백마 탄 왕자처럼 필립 앞에 나타나 그를 데리고 먼 곳으로 떠난다. 마지막으로 그가 필립에게 제공하는 삶의 재미, 즐거움, 의미는 일종의 도박이다. 그게 성공하면 필립은 이제 드리스 없이도 영구적일 삶의 목적을 찾을 것이고 아니면 늘 함께만은 할 수 없는 드리스가 간간이 제공하는 재미에 버티며 시간을 보내다 죽어야 할 판이다.
다행히, 그 도박은 성공했다. 필립은 자신의 장애에 지레 겁먹고 만나기조차 포기했던 펜팔 여성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 직전에는 모델이 된 두 사람의 뒷모습과 옆모습이 살짝 비추는데, 실제 필립은 그 여성과 결혼하여 아이 두 명을 낳아 잘 살고 있고 진짜 드리스 역시 결혼을 한 세 아이의 아버지로 사업체를 운영하며 살고 있으며, 둘은 여전히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치고 지나치게 감동적이고 지나치게 해피엔딩이라서, 아직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여기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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