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이야기를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가 쓴 글쓰기에 대한 철학서는 『천년습작』에 이어 두번째다.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에 관한 책은 늘 흥미롭다. 그들이 이야기를 써야만 한다고 느끼는 이유, 그것을 위해 어떤 식으로 글감을 찾아내는지 정립한 자기들만의 방식은 유명인의 뒷담화처럼 비공식적인 이야기다. 이야기 소재를 찾아내는 방법은 같은 소설의 범주라고 해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각자 세상을 보는 방식이 살아온 인생과 가치관이 다른 이유다.
스스로를 이야기에 매혹된 영혼이라 칭하는 그는 분명 역사라는 무궁무진한 이야기 원천지를 가지고 있다. 개인이 세상에 영위할 수 있는 찰나의 시간은 보잘것 없지만 역사는 찰나가 쌓이고 싸여 영겁이 된 그 무엇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살다 갔고 그들이 엮이고 엮여 수없는 사건들을 창출해내면서 캐면 캘수록 쏟아지는 이야기거리들을 심어두었다. 그가 역사라는 고갈없는 수원水原에 매료된 것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달리 보면 많이 연구하고 조사하고 구상해야 하는, 한마디로 발품 머리품 많이 팔아야 하는 글쓰기 스타일을 가진 작가란 생각도 든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 창출방식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저 글쓰기 인생 선배로서 이런 방식을 얻게 되었다고 전달하고 싶을 뿐이다. 자신이 맨땅에 헤딩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들에 쏟아부었던 시간과 에너지들을 후배들만큼은 낭비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란다. 그의 노파심에 감동어리다가도 결국 글쓰기 방식이란 건 각자 다를수밖에 없으니 그가 말한 시행착오는 아닐지라도 어떤 식으로라도 시행착오는 겪기 마련이 아닌가 싶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자신들만의 이야기 만드는 자세를 정립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자세, 이것이 중요하다. 세상에는 이미 보는 눈이 높은 독자들이 많으며 그들 역시 졸작인 책을 한 권 읽고 덮으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런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는 걸. 하지만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높은 안목을 지녔다 하더라도 자신만의 이야기 만드는 자세가 없는 사람이라면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 만드는 자세라는 것을 좀 더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가 왜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스스로를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지 정해야 하며, 어떤 분위기와 향기와 감정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막연하게 좋은 이야깃거리가 있으니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가소로운 것은 없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런 철학에 대한 반항심이 생긴다. 예술은 예술일 뿐 어떠한 부차적 목적이 있어서는 안되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목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반드시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고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이 숨겨있다면 순수 예술로써의 가치를 잃게 되는 것이며 오직 재미나 감동을 주기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도 일리는 있다. 내가 쓰려는 글이 어떤 글인지에 대한 기존의 틀에 맞추려다가 이도 저도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어느 정도 자신의 이야기 만드는 자세를 만드는 것은 분명 중요할 것이고, 너무 높은 이상을 잡다가 아무것도 쓰지 못한채 인생 끝내는 일 없도록 하는 것은 더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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