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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의 서재

gowooni1 2011. 8. 16. 09:28

이건희의 서재

 

 

 

정말로 이건희의 서재에 어떤 책이 있는지 혹은 그가 어떤 책을 읽으며 살아왔는지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이건희의 서재'를 읽다가 분명 실망할 것이다. 저자는 이건희와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의 서재를 한 번 기웃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런 제목을 붙인 저자에게 어째서 이런 눈속임을 했냐고 따지고 싶을텐데 서문에 그 이유가 나와 있다. 책과 사람이 맺는 관계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쓰자니 별반 흥미도 재미도 없고 한데 이건희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만약 이건희가 읽어온 책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그를 큰 사람으로 만든 것이 무언지 규명한다면 훨씬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저자가 시중에 나와있는 책을 통해 이건희를 연구한 다음 자신이 감명깊게 읽은 책들을 혼합하여 아마 이건희는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지내왔을 것이라고 추측한 책이 지나지 않는다.

 

속은 기분에 실망할 가능성은 다분할지라도 분명 읽다보면 남는 것이 있다. 대신 저자가 어떤 책에서 감명을 받고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에게 있어 이건희라는 코드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덕목 몇가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하나의 상징이다. 안상헌이라는 사람이 생각하는 그 덕목이란 대체적으로 이렇다.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하나의 문제에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몰입력과 문제가 해결될때까지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사색력을 가진 사람. 그는 이건희가 타고난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업에 대한 사명을 마음 깊이 지니고 항상 위기의식의 끝자락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태도 때문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을 가지고 이건희를 연구했기 때문에 기존 에피소드의 반복적인 레퍼토리는 식상하다. 에피소드 하나하나 분석해서 나름대로 덕목을 정의하고 그에 맞는 책을 소개했다는 것이 조금은 참신하다. 그리고 그가 소개한 책들 중 몇 가지는 꼭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라는 점에서 이 책은 읽을만하다. 그 중 자신이 꼭 지니고 싶은 가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면 평소보다 더욱 깊게 공감할 수 있을텐데 다행히 그럴 수 있었으므로 초반의 실망대비 건진 것이 크다.

 

창조적인 사람이건 일반인이건 자신만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인생을 좀 더 의미있게 보낼 수 있다. 리추얼이 풍부해야 삶이 풍요롭다. 리추얼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의지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리추얼을 만들고 그것을 치른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스스로 사명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이라면 분명 탐내야 하는 삶의 자세이다. 저자는 이건희가 리추얼이 풍부한 사람일거라고 짐작한다. 그에게는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재력과 그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시공 안에서 수많은 리추얼을 만들어냈다고 단정짓는다. 그가 단정할 수 있는 비유가, 삼성이 어려울때마다 이건희가 직접 얼굴을 비추어가며 보인 신경영, 후쿠다보고서, 전자제품 화형식 등등 이라는데, 그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자기만의 리추얼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느냐는 것이다.

 

실패에서도 배운다는 부분도 중요하다. 실패를 자신과 일체화 시키고 그 결과에 신경을 쓰기보다 그것에서 과거의 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자세. 그러기 위해서는 결과를 발생시킨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원인을 분석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원인에는 장치와 요인이 있는데 장치는 내부적인 원인, 요인은 외부적인 원인이다.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 그러나 실패만 반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원인분석 능력의 부족일텐데 대개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자신의 실패는 시기적절하지 못했던 외부적 상황의 탓이야, 혹은 내 실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야. 둘 다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꾸준히 쌓을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시대의 흐름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건희에게 삼성의 현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눈과 함께 시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면 대중적이고도 확고한 위상을 지닌 삼성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그런 거대조직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 업의 개념을 확실히 하고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지녀야하는 객관적이고 냉철한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