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섯시에 울리는 자명종을 끄는 나미의 손에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깔끔하고 인테리어가 잘 된 고급 아파트에서 회사 중역인 남편과 고등학생인 딸을 뒷바라지 하는 그녀의 일상은 조금 잘 산다는 것 빼고 대한민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일찌감치 일어나 영양과 정성이 가득한 아침 식탁을 차리고, 딸과 남편을 깨워 밥을 먹이고, 출근하고 등교하는 거 배웅한다. 대충 집안 정리를 하며 정신없는 오전을 보내고나서야 다 식은 토스트 한 조각을 무는 나미. 회사 일 때문에 바빠 정신없는 남편에게 할머니 병문안 좀 가보라고 말했지만 가방이나 하나씩 사라며 돈봉투로 얼버무리는 그가 야속하지는 않다. 그냥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며 엄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그저 밝은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나미였다.
남편이 준 돈으로 산 샤넬 백을 들고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문안을 갔다가 나미는 특실 앞에 적혀 있는 이름을 발견한다. 하춘화라는 이름이 한 시대를 대표했던 가수의 이름이니만큼 평범하지도 않았지만 그 이름의 주인공이 어쩌면 나미가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랐기 때문에 예사롭게 보이진 않았다. 문안이 잦아지면서 그 이름은 자꾸 신경이 쓰이고, 결국 용기를 내어 들어간 특실에서는 말기 암 환자로 2개월 밖에 숨이 남지 않은 하춘화, 고등학교 시절의 멋진 친구였던 하춘화가 나미를 맞이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두 사람이 이십 오년이 지난 후에야 병원에서, 그것도 앞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시한부적 만남을 재개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중요했던 시절을 훌쩍 뛰어넘어 각자의 삶에 더 중요한 것이 생겨버린 지금, 나미는 아픈 친구를 두고 병실을 나와야 하는게 아쉬웠고 그런 나미에게 춘화는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써니' 멤버들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 시간은 이십 오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거기엔 이제 막 전라도에서 상경한 촌스러운 시골소녀 나미의 첫 서울 등교일로 시작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공무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상경한 남희네 가족이었지만 공부를 제법 했던 나미는 이것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곳에 들어가야겠다는 나름의 포부를 품고 등교한 첫 날, 하필이면 학교에서 가장 싸움 잘하고 놀기도 잘하고 말썽도 많이 일으키는 멤버들 사이에 자리를 배정받고 그네들의 눈에 띄게 된다. 자신과 전혀 다른 타입의 아이들 속에서 나미는 기도 죽고 사투리 때문에 주눅도 들지만 그래도 타고난 당당한 성격과 임기응변의 자세로 아이들 사이에서 신임을 얻고 입지를 굳히며 멤버 중 한 명으로 영입이 된다. 원래 여섯 명이던 무리는 그녀가 끼며 일곱 명이 되었고, 새로운 멤버 영입을 축하며 그룹 이름을 써니로 명명한다.
영화의 시간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 나미는 다니던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고 거기서 써니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장미의 연락처를 얻는다. 삼진 아웃의 위기에 몰려 있던 보험 설계사 장미가 마지막 발악을 하며 뿌리고 다녔던 명함이 톡톡한 위력을 발휘하여 나미와 춘화와 연결이 된 것이다. 탄력을 받아 나머지 멤버도 찾아보기 시작하는 두 사람은, 장미의 권유로 비공식적인 경로를 밟아 사람을 찾기로 한다. 그 비공식적인 경로란 바로 흥신소. 돈은 좀 들지만 가장 확실하고 시간이 적게 드는 곳으로 남은 날이 얼마 없는 춘화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흥신소를 통해서 친구 세 사람을 더 찾게 되지만 이십 오년 이 지난 후 살아가고 있는 이 고등학교 동창들의 현재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돈 많은 남편을 얻어 우아하게 살고 있지만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흥신소 단골이었던 욕쟁이 진희, 예쁘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데 능력없는 남편까지 만나 시집살이 톡톡히 하고 있는 불쌍한 금옥, 너무 예뻐 미스코리아가 꿈이었지만 현실에 부딪혀 좌초되고 좌초된 끝에 인생 내리막길에 앉아 술집에서 몸을 팔고 있는 복희. 이들이 써니 멤버들의 현주소였다.
과거의 시간은 나미가 서울 학교로 전학 온 시절을 시점으로 써니가 해체 될 때까지, 현재의 시간은 나미가 춘화를 만난 걸 시점으로 춘화와 사별할 때까지 이다. 나미의 시선으로 이십 오년을 넘나들며 사건들이 전개되고 현재나 과거나 결말의 사건이란 것이 결코 유쾌하지 않지만 영화의 시선은 결코 슬프지 않다. 마지막까지 전부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써니의 멤버들은 춘화가 죽고 난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다시 결성되고, 학생이었을 때도 늘 멋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였던 춘화는 죽어서까지도 강력한 리더의 여운을 남기며 써니 멤버들의 가슴 속에 깊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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