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영화-MOVIE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gowooni1 2011. 3. 22. 23:01

 

 

파리로 향하는 유럽 횡단 열차 안. 옆자리에 앉은 독일인 부부의 싸움에 도저히 독서에 집중을 할 수 없는 여자는 참다 못해 다른 자리로 옮겨 앉는다. 그녀가 앉은 자리의 통로 건너편 옆자리는 역시 책에 집중하지 못하는 남자가 앉아 있었고 둘은 서로를 몇 번 힐끔거린다. 무슨 책을 읽는지 물어보고 나서 동료애를 느낀 이들은 의기투합하여 피신을 하는데 동의한다. 두 사람이 선택한 피신 장소는 기차의 식당칸. 그렇게 달리는 열차 안에서 식사를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 천천히 알아간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에도 대화가 너무 즐거워서, 조금 더 일찍 만나지 못한 현실에 아쉬워하는 지경에 이르고 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남자는 이제 곧 정차하는 비엔나에서 내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름도 나이도 모른채 헤어져야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받아들여야 하는 법. 남자는 내릴 준비를 하러 가고 여자는 혼자 식당칸 안에 앉아 약간은 쓸쓸하게 차창을 내다보고 있다. 그러다 남자가 다시 온다. 이것봐, 이런 말 하면 나를 이상한 놈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우리는 말이 너무 잘 통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말인데, 이번 역에서 나와 함께 내려서 하루 동안만 여기 비엔나를 돌아 다니자. 딱 하루만 그냥 돌아다니면서 서로 추억을 만들어 나가는 거지. 먼 훗날에 돌이켜봤을 때 나같은 놈팽이도 한 명 있었지, 하고 기억할 수 있으면 좋잖아. 일단 내렸다가, 내가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싶으면 다시 넌 다음 기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가면 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편인 여자는 남자에게 이끌리는 마음을 감추려하지 않고 기꺼이 기차에서 내린다. 둘의 이별이 한나절 유예되긴 했지만, 어차피 한 번 헤어지면 영영 만나지 못할 운명이다. 미국에서 온 남자는 내일 아침이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고 여자는 파리로 돌아가 학업을 마쳐야 하는 일상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함께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은 사람을 솔직하고 진실되게 만들고야 말아서 둘은 서로에게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다. 비엔나에서 내린 두 사람은 그제야 통성명을 한다. 남자는 제시, 여자는 셀린. 아메리칸 보이와 프랑스 여자의 비엔나 탐방이 시작되었다.

 

 

 카메라는 비엔나의 구석구석을 비추며 두 사람의 행방을 집요하게 쫓는다. 극적인 사건은 셀린이 제시를 따라 내린 것에서 종료되고 이제 젊은 남녀가 대화를 통해 사고방식을 교환하고 서로를 탐색하는 데 포커스를 둔다. 이제 내일 아침까지 남는 거라고는 시간뿐인 제시와 셀린은 그 시간 안에 자신과 다른 세계를 알아가느라 정신없이 대화를 한다. 그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 전부가 대화의 시발점이 된다. 이름 모를 사람들이 묻혀 있는 작은 묘지에선 셀린의 과거가 살짝 보이고 손금을 봐주는 집시 앞에서는 미신에 대한 각자의 상이한 반응이 드러난다. 시를 지어주고 마음에 들면 돈을 달라는 거지 앞에서 셀린은 낭만적이라고 말하지만 제시는 이미 지은 것에서 조금만 고쳤을 뿐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서로가 겪는 약간의 갈등에서 셀린은 갈등이 없었다면 인류 역사가 없었을 거라며 갈등을 긍정한다.

 

 

제시와 셀린이 나누는 대화는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생각이다. 애초에 전혀 모르던 젊은 남녀가 기차에서 만나 사랑을 키우고 하룻밤만 사랑을 나눈채 헤어진다는 낭만적인 플롯은 베이스에 불과하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자신들의 인생, 사랑, 결혼 같은 일반적이면서도 특수한 견해를 주고 받는 대화, 그리고 대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주제들이 핵심이다. 함께 있는 동안 두 사람은 쿨하게도, 헤어지면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고, 그러다가 미적지근해 지는 관계는 질색이라고 큰 소리 쳐놓고,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 약속을 한다. 다시 만나고 싶다고, 오년 후에, 아니 일년 후, 아니 육개월 후 지금 헤어지는 기차의 플랫폼에서 만나자고 외친다. 그들이 다시 만났는지,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제 비포 선셋을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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