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이선 프롬 Ethan Frome

gowooni1 2010. 12. 25. 17:37

 

 

 

 

여성 최초 퓰리처 상 수상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에 휘말려 손에 들은 작품 치고는 상당히 수수하고 임팩트도 부족한 듯 싶은 이선 프롬. 그렇지만 이는 기대를 많이 할수록 실망도 커진다는 법칙 하에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극히 평범하고 개인적인 결론이고, 실제로 이선 프롬의 작품성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다. 약 한 세기 전 미국 시골 마을의 가난하지만 목가적인 분위기는 캐나다 시골이 배경인 앤 오브 그린 게이블즈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뭔가 늘 한결 같을 평온한 풍경. 하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의 드라마의 종류가 사뭇 달라서, 앤의 명랑함과는 달리 이선 프롬에는 긴장감이 맴돈다.

 

외부 출신인 화자는, 일 때문에 시골 마을에 일정 기간 체류 중인 남성이다. 그는 늘 우체국에서 한 남자를 보게 된다. 그 남자는 무뚝뚝하고 말이 거의 없고 표정도 없으며 항상 한 쪽 다리를 전다. 딱히 볼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매일 같은 시간 우체국에 들러서는 잡지나 들고 가는 남자에게 화자는 호기심이 생긴다. 그는 어째서 남자가 저런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 어떤 사고로 몸에 장애를 지고 살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알 기회가 좀처럼 없다. 그러던 중, 그는 프롬의 마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안면을 트게 된다. 이선 프롬은 비록 가난하지만, 돈이라는 생활비만 조금 주어진다면 자신이 맡은 임무를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하는 성격의 남자였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평소에 다니던 길로 도저히 출퇴근을 할 수 없었던 화자를,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긴 거리를 돌아 태워주게 되었는데, 여기서 화자는 프롬의 인생 이야기를 알게 된다.

 

이선은 원래 도시에서 학업을 하며 뭔가 정신적으로 고아함이 있는 생활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엔지니어로 생업을 하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각종 공연을 보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독하게 가난한 시골집의 형편상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의지를 펴보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에 굴해버린 이선은, 앞으로의 생활 패턴 역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담보로 꽉 묶여 있는 목재소를 운영하면서 병치레를 하던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이선의 삶에 미래의 희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러던 그의 삶에 제노비아가 끼어든다. 지나는 그의 사촌으로서 7살 연상이었는데, 이선의 어머니의 간호에 지극정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죽은 후에는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 이선의 인생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것을 하지 못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라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마음의 고뇌 외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는 망해가는 목재소와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래도 열심히 일 하여 그 안에서 식량을 얻었다. 그러나 이선이 스물 여덟이 되는 해, 그러니까 지나와 결혼한 지 7년이 되던 그 해에 사건이 발생한다. 아내 제노비아의 사촌 아가씨 매트 실버를 하녀로 집 안에 들이게 된 것이다. 이제 막 스물을 넘긴 명랑하고 귀여운 아가씨라는 것 자체가 단조로운 시골 마을에서 하나의 큰 사건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선이 매트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매트는 원래 부유하게 자란 아가씨로, 그 시대 시골에서 밥벌이가 될만한 교육은 하나도 받지 못한 채 성장하였다. 그 말은 하녀로서 바느질을 하고 파이와 비스켓을 굽고 집안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빨래를 할 만한 자질보다, 이선의 정신적 상대로서 함께 문학이나 음악 또는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아름다운 시골 풍경에서 느끼는 감상에 대해 교류할 만한 자질이 훨씬 풍부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선은 어설픈 매트의 집안일을 도와주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그녀가 집에서 편하게 지내도록 갖은 배려를 했다. 그리고 더 당연하게 지나가 그런 남편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나는 자신의 건강을 더 걱정하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런 상황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고 이선은 생각했다.

 

그러던 하루, 지나는 1박 2일이 걸리는 옆 동네에 유명한 의사가 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진찰을 받으러 갑자기 떠나버린다. 지나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는 이선은 오직 매트와 단 둘이 집에 남는다는 사실에 행복을 감출 수 없었다. 실제로 아내가 없던 하루는 너무나 행복한 밤이었고, 손도 한 번 잡아 보지 못했더라도 앞으로 이런 식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만 있으면 더 바랄게 없다고 이선은 생각했다. 하지만 행복이 절정에 이르면 내려와야 하는 인생. 다음 날 도착한 지나는 자신의 병이 지나치게 악화되어 집안일을 하나도 할 수가 없으며 그러므로 무능한 매트를 내쫓고 모든 일을 도맡아 할 수 있는 하녀를 들이기로 했다고 선포한다. 이제보니 갑자기 아내가 여행을 떠난 것은 순전히 매트 실버양을 집에서 제거하기 위함이었음을 안 이선은 분노한다.

 

이선은 매트를 절대로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들이 하나 둘 씩 떠오른다. 자신은 집에서 아무런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매트양과 헤어질 수는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매트가 떠날 때 나도 같이 떠나야겠다. 목재소와 농장은 아내에게 넘기고. 그럼 자신의 여비는 어떻게 하지? 목재소와 농장은 전부 빚이므로 당장 대출 받을 여유도 없었다. 게다가 만약 자신이 떠난다면 그것들을 경영할 건강이 되지 않는 지나는 외로움과 가난에 몸부림치다가 죽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자신은 아직 젊었고, 입을 열면 불평밖에 못하는 한 많은 아내에게 인생을 희생시키며 살 수 없었다. 밤새 고뇌를 하던 이선은 결국 뜬 눈으로 새벽을 맞이하게 되고, 이선은 마지막 고집을 피우며 매트를 자신이 역까지 바래다 주겠다고 한다.

 

이디스 워튼은 이 소설의 모티프를 신문에 난 썰매 사건을 보고 떠올렸겠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상황과 주변 사람들에서 얻었다. 실제로 그녀는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심적 육체적 사랑의 기쁨을 안겨 준 애인과, 결혼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안겨준 것이라고는 실망감과 배신감밖에 없는 남편 사이에서 갈등을 했는데, 보면 이선 프롬이라는 남성에게 자신의 정서가 조금은 투영되었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아이러니이고, 더 아이러니한 것은 그 아이러니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잘 보여준다. 현실과 이상의 아이러니, 매트와 지나의 아이러니, 떠나지도 못하고 잡지도 못하는 아이러니, 떠나려고 하다가 결국 영영 정착하게 되는 결론 속에서 인생이 사실은 그리 아름답지도 않은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