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달콤한 작은 거짓말

gowooni1 2010. 12. 22. 21:06

 

 

 

요시모토 바나나와 에쿠니 가오리의 공통점은 도덕적으로 금기된 사랑을 즐겨 다룬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바나나가 피가 섞인 사람들끼리의 사랑을 즐겨 다루는데 반해 가오리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의 또다른 사랑을 다룬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작가들의 두번째 공통점은 그런 금기된 사랑을 매우 자연스럽게, 그것이 마치 일상 생활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발생하는 일인 것처럼 그린다는 점이다.

 

달콤한 작은 거짓말은 아예 불륜이 메인디쉬이다. 결혼한 지 3년차 부부인 루리코와 사토시의 가정생활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게 흐른다. 인기 테디 베어 작가인 루리코는 집에서 종일 베어를 만들며 시간을 보낸다. 매니아까지 있을 정도로 인기있는 테디 베어들로 종종 전시회도 열면서 그녀는 자신만의 사회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니 루리코가 전업 주부라고 말하기는 어렵긴 해도, 그 인생 모양은 영락없이 그것이다. 베어를 만들고 남편을 위한 음식들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저녁에 사토시가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 종일 있었던 별 것 아닌 일과들을 보고하는 걸로 루리코의 하루는 마무리 된다.

 

루리코나 사토시나 별로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이라 타인 때문에 서로에게 시간을 내지 못해서 불만을 가지게 되는 일은 없다. 문제는 외적인 곳에 있는게 아니라 그들 부부 안에 있다. 둘은 같은 공간 속에서 서로가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지 훤히 파악하고는 있는데, 부부 둘만의 우정을 쌓는 방식으로 삶을 채워나가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사토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샤워하고 저녁을 먹고 난 다음에는 자기만의 요새, 컴퓨터가 있는 방에 틀어박혀 내내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런 사토시를 보며 루리코는 체념을 느낀다. 더구나 사토시에게는 문을 잠그는 습관까지 있어서 차 한잔 마시라는 말조차도 루리코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 물어봐야 한다. 2년 간 둘이 섹스리스 부부로 살았다는 것도 결정적인 문제라면 문제인데, 더 상위적인 문제는 루리코나 사토시가 그런 것들을 서로 맞추어 나가면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무심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남들이 봤을 때는 완벽해 보이는 루리코의 집에서 그녀는 자신의 집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간파한다. 이 집에는 사랑이 없어, 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씁쓸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들은 그런 루리코의 마음은 눈치도 못채고 이상적인 가정이라 칭찬한다. 공허함을 감추기 위한 화려함을 알아보는 사람은 오직 사토시의 여동생인 아야 정도인데 아야 역시 상당히 쿨 한 캐릭터이다. 오빠의 회사 앞으로 찾아가서 바람은 새언니 모르게 피라고 하거나, 루리코가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상황을 훤히 이해한다는 듯 오빠한테 적당히 둘러대 주겠다고 관용을 베푸는 동생. 현실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도 에쿠니 가오리 세상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이다.

 

루리코와 사토시의 메우기 힘들어 보이는 골은 아이러니하게 불륜을 통해 나아진다. 나아진다는 방향의 척도가 옳은 것인지, 혹은 그 골이 정말 메워지는 건지 더 깊어지는 건지에 대한 답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찾기 포기한 사랑이란 감정을 새로운 사람에게서 보상받고는, 집에 돌아와 더 풍만해진 기분으로 가정생활을 정상적으로 돌린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애인을 만듦으로써 3년 만에 처음으로 각자만의 비밀을 간직하게 되고, 오히려 아무도 절대 침범할 수 없는 심적 공간을 소유하는 덕분에 서로에게 더 배려심을 베푼다. 우습게도,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사랑을 나누고 난 후 무슨 생각을 하냐는 애인의 대답에 망설일 것도 없이 '남편 생각' 이라고 솔직히 말하는 루리코. 사랑하기는 해도 지켜야 할 것이 아닌 애인에게 잔인하게 솔직한 모습과, 사랑이 끝났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도 지켜야 할 것임에는 확실한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까닭은, 알게 모르게 또는 적게 크게 우리의 모습과 공감이 되기 때문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