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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gowooni1 2010. 10. 2. 11:00

 

 

 

인간으로서 최고로 추구할 수 있는 선이 행복이라면 인생의 이상적인 형태는 늘 행복감에 고조되어 있는 모습이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현실은 생각과 많이 달라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것도 아니고 일부 행복한 사람들이 늘 행복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배고픈 사람들이 배부른 사람들보다 포만감에서 오는 행복을 더 만끽할 수 있는 것처럼 항상 행복한 사람은 그 상태가 곧 행복인 줄도 모른다. 행복이 최고의 선이라는 영광의 위치에 등극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구성요소에 70퍼센트의 권태와 20퍼센트의 불행과 7퍼센트의 강렬한 고통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희소성이 높을수록 가치가 상승되는 건 경제학의 논리를 벗어나서도 적용 가능하다.

 

불행을 알아야 행복한 줄 알다니, 이건 사실 궤변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건 이미 살아오면서 불행한 일을 많이 겪어봤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행이 뭔지도 모르던 어린아이 시절에 '나는 지금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해'하고 인지한다는 것이 코미디다. 모든 것에서 좋은 것을 추구하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만 좋지 않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배타하고 좋은 것을 추구할 수 없다. 좋지 않거나 나쁜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경우에야 관용이 생기고 더 수준 높은 최선을 추구할 수 있다. 자신의 결점을 무턱대고 싫어하던 어린 시절보다, 그런 스스로의 결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기애를 키운 사람이 더 행복하고 또 주위에서도 그런 사람에게 더 넉넉한 오라를 느낄 수 있다. 결점은 무시하라는 시중의 수많은 충고도 유익할 때가 있긴 하지만, 결점을 인정한다는 건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용기있는 자는 주변인들에게도 용기를 주며 스스로에게서 힘을 얻는다.

 

행복은 광범위하다. 우리는 여러 방면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느끼는 행복, 멋진 경치를 감상할 때 오는 행복, 무언가 어려운 것을 극복했을 때의 행복,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과정 자체에서 느끼는 행복,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심리적인 행복 등등. 그리고 인생의 어떤 부분에 더 큰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각각 추구하는 행복의 방식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오직 한 가지에서만 행복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다들 각각 조금씩 행복의 방식을 취하고 다만 그 비중이 다를 뿐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잘 만들면서 오는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고 몰입과 극복에서 오는 성취감의 행복에 더 빠지는 사람은 그런 일들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게 어떤 방식의 행복일지라도, 그것들을 추구하는 데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관계의 행복에서 사람들은 서로 더 많은 상처를 주고 받고, 극복의 행복에서는 수많은 내적 외적 장애물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사실 이건 슬픈 논리라고 생각도 든다. 행복하기 위해선 불행해야 하고 어려움도 감수해야 하다니, 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귀찮은 과정인지. 더군다나 인간은 어느 누구 하나 자신의 의지로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눈 뜨고 살다보니 세상에 태어나기는 했는데 자아라는 개념이 형성될 무렵부터 자아실현을 위해서 살아야 하기 보다 온통 의무과 책임에 휩싸여 앞으로 남은 시간을 뜻대로 사용할 수도 없다는 걸 깨닫는다. 더 아이러니 한 건, 만약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기꺼이 자진해서 그 무거운 짐을 지려 든다는 점이다. 불행하기 위해 태어났는가? 그럴지도.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은 오지 생존을 위해 싸워왔다는 긴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 몸 속에 흐르는 유전자는 야만적 생존경쟁에서 싸워 이긴 불행하고 유능한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인간에겐 이성이 있고 고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우리 역시 다른 동물과 다를바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살아가는 '짐승'에 불과하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인간이므로 행복해야 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또 가끔 행복이라는 고조된 감정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생존을 위해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는 책임쯤은, 자동차를 몰기 위해 기름을 넣어주고 정비를 해줘야 하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면 충분하다. 기름 넣고 정비만 좀 해주면 자동차를 몰고 어디든 마음 먹은대로 갈 수 있으니 그게 즐거움이고 행복인 것처럼. 의무와 책임과 권태와 불행과 고통 덕분에 행복이 가치 있고 빛나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들을 전부 사랑하고 끌어안는 과정에서 오는 게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의무와 책임과 불행과 고통도 즐기다보면 즐길만할 때도 있다. 단, 권태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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