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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좋아하세요?

gowooni1 2010. 9. 25. 17:11

 

클래식을 좋아하세요?

네, 좋아합니다.

클래식의 뒷이야기와 앞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주는 편지 같은 글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들은 각자의 구미에 맞게 상대를 조각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러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떠난다. 떠난 후에 가만 생각을 해보면 상대방에게 끌렸던 점은 나와 다른 무언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다음 기로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하고 상대의 곁에 남아 좋은 동반자로 인생을 살겠는가 또는 나와 너무 다른 부류의 사람이니 깨끗하게 포기하고 다른 상대를 찾겠는가.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집에서 키우는 동물에게도 적용될 수 있고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나 삶을 살아가기로 한 방법에도 마찬가지다. 딱 맞아떨어지는 게 처음부터 있을 수는 없으니 어느만큼 타협하고 일치점을 찾아가는 게 옳고 또 그게 인생살이 대부분의 모형이지만 굳이 타협에서 방법을 찾을 이유가 과연 있을까. 극과 극인 상태에서 중간지점을 찾는 건 비교적 극이 덜한 것들이 중간지점을 찾는 것보다 어렵고 시간이 들텐데. 맞지 않는 건 맞지 않는 거니까 깨끗하게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최선을 다했다는 전제 하에서 그 조건은 성립된다.

 

항성 주위를 맴도는 행성들의 궤도는 거리가 각자 다르다. 수성이 제1 궤도라면 금성은 제2 궤도고 지구는 제3 궤도가 된다. 태양과 무조건 가까이 있다고 해서 수성이 지구보다 태양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이유는 둘 다 늘 태양 주위를 맴돌고 있긴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는, 수성이나 금성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독특한 색과 생명체를 가진 유일한 태양계의 행성이 되었다. 너무 맹목적으로 사랑하면 그저 뜨거운 돌덩어리에서 그치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버리면 뭔가 되다 만 것 같은 화성이 되어버리니 이 '적당한 거리'라는 것의 문제는 늘 고찰의 대상이다.

 

자신이 마음 먹은 방식의 인생에서 한 번이라도 희열을 맛 본 자는, 그것이 주는 고통이 너무 커서 미워하고 증오하고 회피하고 해도 결국 돌고 돌고 돌아 그 길로 돌아오는 경우가 흔하다. 다른 어느 것에서도 그와 같은 희열을 얻기가 불가능하다면 어려워도 자신의 힘을 기울이는 정도에 따라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그 길로 끌려온다. 반려자의 싫은 점 때문에 마음을 잠시 잃었다가도 그의 좋은 점 때문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연인을 사랑하는 단계와 조금 비슷하다. 이쯤되면 애증도 교차하지만 애愛가 더 깊어지므로 그 길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클래식을 좋아하세요?'의 저자 피아니스트 김순배는 그런 면에서 자신만의 색을 확립한 지구와 같은데, 그녀의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녀의 피아노에 색이 있다 없다 여부를 판단하기는 좀 힘들겠다. 그녀의 색은 범클래식적으로 봤을 때 어렵지 않게 나타난다. 그녀는 클래식에 대한 글을, 매우 아름답게, 속삭이듯 쓴다. 하지만 그녀는 겸손이라는 미덕까지 쥔 사람인지 자신의 글은, '음악에 전부를 내걸지 못한 자가, 음악을 버리고 방황했지만, 돌고 돌아 다시 음악의 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던, 일종의 회한과 같은 글'이라고 정의한다. 그런 사람이 오직 그녀 뿐일까? 그녀의 승리 이유는 어쨌거나 다시 음악과 함께 하는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