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연락하지 않지만 기억하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코드가 잘 맞는 편도 아니었고 그래서 화제나 공감대 형성대가 달랐던 그녀를 지금까지도 가끔 기억하며 안부를 궁금해하는 이유는 그녀가 가끔 내게 해준 책 선물 때문인 것 같다. 정식적으로 준 선물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다 읽은 책을 넘겨 주는 식으로 건네 받은 책이었지만 그런 산뜻한 방식 덕분인지 더 부담없이 받았고 읽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식으로 그녀의 손을 타고 나의 소유로 된 책 중 '산에는 꽃이 피네' 라는 제목의 책이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 책이 바로 법정 스님의 책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경로다. 아직 책을 많이 읽지도 않고 또 그럴 필요성도 못 느낀 내게 아주 딱 맞는 책이었다. 그리 두껍거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문체도 아니었고 그저 담담하게, 산에 사는 한 노 스님의 생활을 엮어 놓은 수필집이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수필은 그렇게 부담이 없어서 좋다.
그때 처음으로 산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두막에 사는 스님의 생활을 알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다가 워낙에 맑은 문체로 오두막의 이점을 나열하였으니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고서는 1분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내게도 그 삶이 무척이나 여유롭고 청아하고 고귀해 보였다. 그 막연한 이미지와 함께 몇 년 후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서 언젠가 그런 속세와 떨어진,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살아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스님은 조금 그 생활에 대해 현실적으로 말한다. 사람 사는 일이 다 똑같다며, 혼자 사는 데다가 전기 없이 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조촐한 살림의 수고스러움을 조근조근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것을 수고스럽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망상과 졸음으로 채운 어설픈 명상 시간보다 오히려 더 머리가 맑아 지는 일들이며 시간이라고 말한다. 청설모 때문에 찢겨진 문의 창호지를 하나 하나 바르는 일도, 아궁이에 장작을 지피고 주변의 눈을 치우는 일도 그렇게 자신이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말한다. 혼자 사는 것을 좋아하는 괴팍스러운 성미에 대한 대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괴팍한 사람이 스스로를 괴팍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법정 스님은 단지 고독을 즐긴 사람이었을 뿐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에세이의 일부를 응용해서, 만약 사람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면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속에서 세상의 견해에 순응하며 사는 단계, 홀로 존재 하면서 자신의 견해에 따라 사는 단계, 세상 속에서도 온화함을 유지하며 고독하게 홀로 서는 단계. 그리고 법정 스님의 오두막은 그 분이 세상 속에서도 온화하게 홀로 설 수 있도록 고독을 유지하게 해 주는 그 분 만의 안식처 였을지도 모르겠다.
'홀로 사는 즐거움'을 읽으면 고립과 고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냥 수인처럼 갇혀 있는 고립의 상태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함께 있되 홀로 고독하게 있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얻으라는 게 스님의 의도한 바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고독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한 자라도 세상에 뒤섞이다 보면 그런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껴 봤을 것이기 때문에, 한평생을 관계를 바탕으로 한 고독을 추구하며 살아간 스님의 삶 속에서 그것이 일생을 들인 수행을 통해야 다달을 수 있는 경지임을 어렴풋이 예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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