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안녕, 언젠가(사요나라, 이츠카)

gowooni1 2010. 6. 26. 17:31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야구로 탄탄한 몸을 가진 청년 유타카는 성격도 사근사근하고 수완도 좋아서 어른들로부터 호감을 사는 서른 살의 남자다. 성격만 좋은게 아니라 외모도 근사해서 여성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실제로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가졌다. 그래도 그것은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가 적당한 신붓감을 물색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 창업주의 미망인이 소개해 준 여성 미츠코를 만나게 되었을 때는 '결혼을 하려면 이런 여자여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기존 여성들과의 관계를 전부 정리해 버렸다.

 

태국 방콕 지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유타카는 당분간 미츠코와 원거리 연애를 해야만 했다. 결혼을 하면 미츠코는 남편이 있는 태국으로 와서 살 예정이었는데 결혼 날짜는 크리스마스. 결혼까지 4개월여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는 유타카는 약혼을 한 후 태국에서 친구들과 약혼 축하 파티를 거나하게 하고 있었다. 그 파티에 초대 받은 한 여성이 약혼 축하 파티의 주인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술이 취한 한 친구가 그에게 '저 여자가 너에게 반한 것 같은데.'라는 농담을 붙여 보았지만, 미츠코와의 약혼으로 행복하기 그지 없었던 유타카에게 그 말은 곧 잊혀지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야구 연습을 하고 집으로 온 유타카는 얼마 안 있어 초인종이 울리는 벨소리를 듣고 근처에 사는 친구려니 하며 별 경계없이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나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얼마 전 파티에서 유타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던 여자, 토우코였다. 토우코는 활짝 열린 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 얼떨떨한 유타카 앞에서 서슴없이 옷을 벗고 이 '결혼할 여자가 있는 남자'를 과감하게 유혹한다. 아무리 약혼녀 미츠코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마치 여왕처럼 당당하게 자신을 리드하며 관계를 주도하는 토우코의 육탄 공격을 유타카는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둘의 위험한 관계가 시작된다.

 

그 뜨거운 첫날 밤이 시작된 이후 토우코의 전화를 받고 나간 두번째 만남의 장소는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리엔탈 방콕 호텔. 최고의 호텔 내에서 최고의 룸인 '서머싯 몸 스위트'에서 장기 투숙 하고 있는 토우코의 정체를 궁금해 하면서도, 묻지 말아야 깊이 관여되지 않을 것 같은 자기 보호 본능 하에 또 다시 육체적인 관계만을 갖는다. 자신은 이 여자와 결혼 전 즐기기만 할 뿐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너무 깊은 정을 주면 안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반대로 토우코와 관계를 진전시킬수록 그녀에 대한 마음은 몸을 훌쩍 넘어서고 만다.

 

4개월 간, 30대의 두 사람은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땅에서 그보다 더 불같이 타오르는 서로에 대한 갈망으로 점철된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유타카의 인생, 근사한 집안의 괜찮은 딸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을 낳는 한편 회사에서는 탄탄대로인 승진가도를 걷게 될 자신의 인생이 점점 다가올수록(물론 그 시발점은 미츠코와의 결혼이다) 둘의 사이엔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돈다. 그러는 사이 유타카는 그동안 방콕 내에서 쌓아왔던 건실한 청년의 이미지를 잃어버리고, 다른 편으로는 궁금했던 토우코의 과거를 알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해서,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그러니까 유타카의 결혼식날인 그 전날에 토우코는 유타카의 행복을 빌며 태국을 뜨고, 유타카는 예정되었던 대로 미츠코와 결혼한다. 그러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유타카 역시 유럽지사로 발령이 나 태국을 뜨고 25년이라는 시간이 매정하게 지난다. 그 긴 시간 동안, 바람 한 번 피지 않은 채 미츠코에게 성실한 남편으로서 두 아들에게 존경스러운 아버지로서 살아온 유타카는 일 때문에 방콕을 한 번 더 찾게 되고, 또 한 번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다. 단지 그 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한창때였던 25년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토우코에 대한 그리움이 강렬하게 자신을 휘감는다. 과연 둘은 재회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야기 내내 관철되는 사랑관은 바로 이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과연 '사랑 받았던 추억'을 기억할 것인지, 반대로 '사랑한 추억'을 기억할 것인지. 사랑 받는 인생도 행복하고 보람있겠지만, 자신이 직접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의 의미는 완성된다고, 작가 츠지 히토나리는 토우코를 통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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