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달나라에 사는 여인

gowooni1 2010. 3. 7. 00:05

 

 

 

달나라에 사는 여인

저자 밀레나 아구스  역자 이승수  원저자 Agus, Milena  
출판사 문학세계사   발간일 2009.04.10
책소개 환상적인 사랑을 꿈꾸는 달나라 여인! 마법 같은 사랑만을 꿈꾸는 한 여인의 이야기『달나라에 사는 ...

 

그녀는 매력적이었다. 뭇 남성들이 그녀를 한번 보면 반드시 한번 더 보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투명하고 하얀 피부, 이탈리아인다운 뚜렷하고 환한 이목구비, 짙고 검으며 풍성한 숱의 윤기 흐르는 머릿결, 여자들마저도 탐이 나는 굴곡진 몸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한없이 솔직한데다 감수성까지 풍부해서 시도 쓸줄 알았고 벽화도 멋지게 그려낼 줄 알았으며 글도 곧잘 썼다. 자신에게 구혼해 오는 남자들에게 솔직한 마음과 감성 가득 담은 러브레터도 건넬 줄 알았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난 시기의 이탈리아 시골 섬마을에서 그런 그녀는 미친 여자였다. 여자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 안되었고, 최대한 억제된 마음으로 묵묵히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것이 여자의 최고 미덕이었다. 남자에게 먼저 사랑을 듬뿍 담은 연애시를 써보내서도 안되었고 교회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눈길을 주어서도 안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열렬하고 환상적인 사랑만을 하기 위해 태어난 그녀였다. 그녀는 다른 시골 여자들이 하지 않는 행동들을 서슴없이 했고 덕분에 미친 여자 취급을 받았으며, 결국 그녀의 구혼자들은 모두 떠나가버렸다.

 

그녀는 그시대 사람들 기준으로 노처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이탈리아 섬마을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피난을 갔다. 그녀의 집에 몸을 숨기던 남자는 무정부주의자에 공산주의자였고 폭격으로 인해 부모님과 누이들과 아내를 잃은 홀아비였다. 그는 자신에게 따뜻한 은혜를 베풀어준 그녀 부모님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말한다. 그녀의 부모들은 미친 딸과 결혼해주겠다는 홀아비의 보답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맙게 받아들이고, 미친 그녀의 의견을 무시해버렸다. 그녀는 홀아비에게 달려가서 말한다. 자신은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할 자신이 없다고. 그는 괜찮다고 말한다. 그는 전 아내가 죽은 이후로 매음굴 단골이었으므로 생활이 크게 바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사랑만을 하기 위해 태어난 그녀에게 낭만이 없는 남편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싫은 사람은 아니었으나 도저히 좋아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남편은 높은 침대의 양 끝에 붙어서 잠을 잤으며 가끔은 한밤 중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도 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절대적으로 호감을 느끼지 못했고 단 한번도 그를 자세히 쳐다보려 한 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담배를 피는 남편의 옆모습을 새삼 오랫동안 지켜본 그녀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음굴에서 여자들이 하는 것을 내게 말해줘요. 내가 다 해줄게요. 대신 거기에 쓸 돈을 아껴 담배나 좀 더 사서 피세요.

 

그녀는 아름다운 여자였고 육체적으로도 완벽했으므로 그의 남편은 곧장 매음굴을 끊었고 덕분에 그들의 가정엔 여유가 생겼다. 돈을 모으기 시작한 남편은 폭격으로 무너진 자신의 집터에 다시 집을 짓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정신만 빼고 완벽한 그녀의 몸에는 작은 이상이 하나 있었는게 바로 신장 결석이었다. 몸 안에 계속 돌이 차는 덕분에 그녀의 몸에 자리잡은 생명들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은 돈을 쥐어주며 육지의 온천에 가서 요양을 하고 오라고 한다. 마음에도 내키지 않는 온천지방의 호텔에 떠밀리듯 간 그녀는 거기서 재향군인을 만난다. 언제나 깔끔한 정장에 느슨한 면도를 하고 나타나는 그 재향군인은 한쪽 다리가 없었지만, 그녀에겐 완벽한 남자였다. 그녀의 감수성을 완벽히 이해하고 그녀의 시에 진심을 담아 칭찬할 줄 알았던 그야말로 그녀에게 환상적 사랑, 육체와 정신이 함께 융합할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온천지방에서 돌아온지 9개월이 지나 그녀는 건강한 남자아이를 낳았다. 그녀에게는 이제 남편과 함께 일상을 나눌 아들이 생겼고, 생활은 점차 예측가능해졌다. 남편과는 여전히 육체적으로만 결합한 상태였지만, 여자에게 육체적인 것만을 요구한 평범한 가장이었던 남편은 그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배려를 그녀에게 베풀었다. 정신성과는 거리가 먼 남편은 비록 숭고하지는 않더라도 의무로서 아내를 사랑했고 항상 그녀 곁에서 보살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이미 같은 별 사람이 있었다. 같은 별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자신이 적어도 한 사람에게만큼은 미친 여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생의 버팀목이자 마음의 큰 위안이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남편도 죽고 그녀도 죽었다. 그녀는 살아 생전 한번도 그 재향군인을 다시 만난 적이 없었다. 하루도 잊지 않고 진정으로 사랑한 그 남자. 어째서 그는 한번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던 것일까? 그녀의 손녀는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이 이야기들을 생각하면서 종종 그 의문에 잠겼다. 답은 간단했다. 재향군인이 할머니가 그를 사랑한만큼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너무도 사랑해서 자신이 그녀의 평화로운 일상에 위험을 가져다줄까봐. 어쨌거나 손녀는 자신의 할머니가 살았던 집에서 신혼집을 꾸미기로 한다. 할머니를 사랑했던 그녀는 자신의 할머니가 남긴 벽화들이나 화분 같은 생활의 흔적들, 그녀가 남긴 분위기들을 가능한 한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리모델링을 한다.

 

하지만 세월의 흔적을 막을수 없는 어느 벽 한 곳이 떨어져나가고 거기서 할머니의 노트가 발견된다. 거기서 손녀는 할머니의 전全인생에서 오직 한번뿐이었던 그 완벽한 사랑의 진실을 알게된다. 한때 어쩌면 진짜 자신의 할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던 재향군인은 온전히 할머니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한 남자였다는 것을, 그리고 할머니는 자신의 세계에서만 완벽하고 환상적인 사랑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여인이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