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설국(雪國:유끼구니)

gowooni1 2010. 2. 21. 16:13

 

 

 

설국(세계문학전집 61)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역자 유숙자  원저자 川端康成  
출판사 민음사   발간일 2009.01.20
책소개 요코미쓰 리이치 등과 감각적이고 주관적으로 재창조된 새로운 현실 묘사를 시도하는 신감각파 운동을 일...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

 

일본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의 높은 문학성을 전 세계에 인정받았는데 그 유명세만큼 이 설국의 첫문장도 유명하다. 일본어 특유의 음운을 잘 살린 미학이 있다고 하는데, 일본어와 가장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어로(일본인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미학을 느끼기 어렵지 않다(음운의 율동성은 제외하고라도). 아름다운 소설을 만들고 싶다는 작가의 염원덕분에 아름다운 문장들이 엮여졌지만, 그 염원이 너무 길었던 탓인지 설국은 거의 13년이 넘도록 고쳐지고 다듬어졌다.

 

부모가 물려준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며, 가끔 서양 무용에 대한 (아무도 보지 않는) 책이나 쓰면서, 마음이 내키면 훌쩍 여행이나 떠나면서 살아가는 시마무라는 이 눈의 고장에 자꾸 발길이 끌린다. 거기에는 그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드는 한 게이샤가 있기 때문이다. 고마코. 그녀는 스무살 초반의 어린 나이로, 처음부터 게이샤는 아니었지만 도쿄에 있는 약혼자의 병세가 악화되는 바람에 치료비를 보태고자 결국 게이샤로 나서고 만다. 하지만 고마코가 몸까지 팔아가며 돈을 보탠것과 상관없이 약혼자는 '죽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그의 곁에는 요코라는 한 여자까지 함께 있었다.

 

시마무라는 지고지순하고 청순한 요코에게도 호감을 품지만, 시마무라를 좋아하는 마음을 애써 감추지 않으며 정열적이고 생기넘치는 여자 고마코의 사랑을 받는다. 그녀의 인생이 그리 평탄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시마무라 자신과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임에도 한결같은 고마코의 마음 때문인지,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외면할 수 없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고마코 곁에 머물고, 도쿄로 돌아가서는 고마코가 그리워 그만 다시 눈의 고장으로 오고마는 시마무라. 그는 인생만 우유부단한게 아니라 성격마저도 우유부단하다.  

 

 

설국의 배경은 니가타현이고, 문장 첫머리의 국경은 니가타현과 군마현의 경계다. 일본 본토를 가로지르는 긴 산맥 위로 동해의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도쿄쪽으로 넘어가다가 그만 높은 산맥을 만나 전부 눈으로 쏟아버리는 통에 니가타현(정확히 말하자면 소설의 배경인 유자와 온천)은 항상 몇자씩 되는 눈이 쌓인다. 일년 중 6개월은 항상 눈이 있다고 하는 이 눈의 고장이 설국이라 이름붙여진 것에는 순전히 지방적 특색 때문이다. 도쿄와는 고작 직선거리로 150키로미터 떨어진 곳이어도,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따듯한 도쿄와는 전혀 다른 어둡고 적막한 눈의 나라가 시작된다. 가와바타는 유자와 온천에 직접 머물면서 이 소설을 집필해나갔다고 한다.

 

1930년대 당시 유자와 온천.

작가가 집필하던 공간은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소설은 하나의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 쓰여진게 아니라 작가가 생각난대로 조금씩 발표를 하며 완성되었다. 때문에 기승전결의 완벽한 구조는 없다. 아마 그러한 이유에서 작가는 몇번씩이나 소설의 결말을 고쳐썼을 것이다. 하지만 설국의 진정한 미는 이곳이 펼쳐지는 배경의 아름다움이며 고마코와 시마무라의 헛수고처럼 여겨지는 안타까운 관계의 심리묘사에 있다. 아름다운 눈의 나라에서 이루어질수 없는 유부남과 게이샤의 미묘한 관계는 일본인들이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남녀 관계란것이 어떤 것인지,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 관계가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해도, 그건 독자가 가지고 있는 애정에 대한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