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고슴도치의 우아함

gowooni1 2009. 6. 16. 00:36

 

 

 

고슴도치의 우아함

저자 뮈리엘 바르베리  역자 김관오  
출판사 아르테   발간일 2007.08.31
책소개 쉰네 살 수위 아줌마와 열두 살 천재소녀가 만나다! 콧대 높고 못생긴 수위 아줌마 르네와 자살을 ...

 

외부적인 화려함, 영광 등은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동기 부여를 해준다. 하지만 일단 그 길에 들어섰을때는 자신이 처음 감명을 받았던 그 외부적인 요소들을 초월해야 한다. 그런 초월의 과정이 없을 때 개인의 발전은 명확하게 제한된다. 사실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이나 찬란한 영광은 오히려 개인의 목표를 더 높게 세우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진정 한 길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이 이룩한 것을 가지고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을 지적인 측면에 적용해봤을 때,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지은 뮈리엘 바르베리는 참으로 철학을 잘 가지고 놀았다. 그녀는 원래 철학교사였으나 자신의 책이 본의 아니게 큰 성공을 이룬 덕분에 전업 작가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평생을 먹고 살 돈이 생기자마자 그녀의 본업을 저버렸다고 해서 그녀가 과연 철학을 단순히 밥벌이로 생각했을까? 아니다. 그녀는 분명 철학을 즐겼을 것이다. 그녀가 일을 그만둔 것은 가르치는 일이 철학하고 글쓰는 일보다 시간을 투자할 가치를 못 느꼈기 때문일 뿐이다(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여간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읽다보면 저자의 철학놀이 재미에 푹 빠져들게 된다. 너무 심오하지도 않으나 너무 가볍지도 않다.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지는 않아도 슬플 때는 여전히 함께 슬프다. 그녀가 소설을 구성하면서 쓴 문장에는 모든 시선에 거리감이 존재한다. 그건 최상의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하의 물질적 삶을 영위하는 수위 르네 미셀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정신적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사회적 기준의 수위 노릇을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자연스럽게 세상에 대한 거리감이 형성되는 신분이다.

 

부자들만 사는 아파트의 54살 늙은 수위라는 직업은 아파트 거주인들로 하여금 그녀를 고양이만한 존재감과 지능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그친다. 이런 사회적 편견은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으면서 혼자 자기 만족적인 지적 유희를 즐기려는 르네에게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녀는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계층의 가장 먼 곳에서 가장 냉철하게 사회를 바라보며 분석하고 풍자하지만 그것을 고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그냥 그녀는 그런 삶을 살다가 죽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그런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는 눈이 등장한다. 한 명은 톨스토이와 모짜르트를 좋아하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일본인 영화 감독 가쿠로 오즈이고 다른 한 명은 아파트 거주가족 중 한 가구인 조스 가족의 막내딸 팔로마 조스다. 이 둘이 르네의 정신적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이유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이 둘이 상위 계층이 으레 가지고 있는 사회적 편견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은 순수하며 사람의 영혼을 볼 줄 안다. 르네를 수위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지적 수준의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직시'한다. 그리하여 54살, 15년 과부, 무자식 르네 미셸에게는 난생 처음으로 멋지고 우아하며 고상한 취미까지 같은 남자친구가 생기고 영혼의 언어가 통하는 팔로마라는 딸까지 생긴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결말인데, 이 결말은 프랑스적인 시니컬함이 절정으로 묻어나온다. 결말에 대해 억지로 분석하고, 왜 작가가 이런 결말을 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를, 어떤 식으로 결말을 내야 좋을지 몰라 가장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을 뿐인 작가의 상상력 부족 탓으로 돌리고 싶다.

 

결말이 궁금한 사람? 직접 책을 읽어보라. 맨 마지막 장만 들춰봐도 금방 답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읽어서는 이 책을 읽는 도중에 모처럼 느낄 수 있는 지적 궤도를 따라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즐거움은 책의 앞부분에 거의 몰려있으니 조금 진도가 더디게 진행되더라도 그 과정을 음미하며 읽을 줄 알길 바란다. 철학의 즐거움을 대중화한 작가의 글솜씨에 놀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