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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욱 식으로 해석한 세상 -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gowooni1 2009. 1. 19. 10:01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저자 오영욱  
출판사 샘터사   발간일 2005.05.14
책소개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세이를 쓰고, 또 그걸 읽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 쳇바퀴 돌듯 굴러가는 일상에서...

성격상, 약간의 '마니아'기질이 있다. 한 번 필이 꽂히면 파고 들고자 하는 성격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앞의 수식어 '약간'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파고 들되 너무 깊이 파지는 않는 것. 그리하여 언제나 너무 모르지도 않고 너무 많이 알지도 못하는 적당한 선에서 그친다. 좋게 말하면 적당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살짝 부정적으로 말하면 이도 저도 아닌게 많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호기심이 왕성하고 알고 싶은 분야가 너무나 많으니 이런 나의 기질을 어떻게 해 볼 도리는 없다.

 

최근에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일탈을 꿈꾸는 자로서, 오영욱(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이라는 저자의 여행스케치 책들에 반해 버렸다. 저자 검색을 해보니 저서가 몇개 더 있었다. 굳이 저서라고 할 것도 없이, 그가 삽화를 그린 책도 발견되었다. 생각외로, 개성있는 그림체로 나름 커리어를 쌓아왔던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 중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라는 책은 3년 반의 회사생활을 훌훌 접고 일어나 세계를 여행하며 특유감각으로 그린 각 곳의 그림들을, 시적인 단상들과 함께 출간한 책들이다.

 

책 제목만 이탈리아 지역 이름을 빌렸을 뿐, 사실은 세계 각국을 넘나들며 그린 스케치와 사소한 일들(사소하지만 막상 당했을 때에는 막막한,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추억인 일들), 그리고 단상斷想들이 어우러져 있다. 오영욱이라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여기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아직은 빨간 헬멧의 오기사보다는, 진짜 오영욱이 더 전면에 배치 된다는 점이 다르다. 진짜 오영욱은 빨간 헬멧의 오기사와 둘이서 세계를 여행한 모양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그의 책을 본 사람은 알것이다)

 

브라질에서 강도들에게 강탈당하여, 모든 것을 잃었을 때의 허탈함부터 책은 시작한다. 언어도,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가진 것이 몸 하나밖에 없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상상만해도 충분히 느껴진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강행하도록 독려해준 부모님이 있었고, 그리하여 이 책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도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며 여행을 한 저자도 대단하지만, 자식 걱정보다는 그래도 가야할 길을 일러주는 부모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의 그림은 특이하다. 어안렌즈로 본 듯한 그림들이 사진으로는 담을수 없는 광경들을 만들어낸다. 여행을 하고, 단순히 사진을 찍고 오는 것보다, 내가 두 눈으로 본 광경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새롭게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남들도 다 보는 광경들일텐데, 내가 그린 그림으로 인해 '내가 세상을 해석한 것은 이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렇게 '자기식으로 해석한 세상을 구축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작업인지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의 전공이 건축이라서 다행일 것이다. 건축이고, 조형물이기 때문에 그가 그리는 그림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아마 자연세계를 어안렌즈로 그린다면 이보다 매력적이지는 못할 것같다.

 

그의 그림을 보면 '본다는 것의 의미'를 한 번 되집어 보고 싶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세상을 보고 부대끼며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이 본 세상은 다른 이들이 본 세상과는 다르다. 자기만의 해석방식을 완성시킨 사람들은 그만큼 매력적이다.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들을 어떤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말테의 수기의 말테처럼, 보는 것을 연습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