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관심가는책200+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

gowooni1 2008. 9. 14. 10:38

 

 

여행의 기술 : 알랭 드 보통 : 정영목 역 : 이래 : 354p

 

[책 표지가 너무 멋지다. 비행기 창에서 내려다 보이는 구름은 우리를 상상속으로 몰아 넣는다]

 

내가 가장 최근에 갔던 여행이 아무래도 파리인지라, 여기에 대한 잔상에 꽤 오래 머리에 박혀 있다. 그리고 여행의 기술을 읽으면서 맞장구를 칠 수 있었던 것도 파리 여행이 선행되었기 때문일거다. 어떤 곳에 대한 조금의 지식과 막연한 동경, 사진속 풍경에 나를 빠뜨리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을 느껴본 사람들은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여행의 첫번째 전제조건은 뭐니뭐니해도 목적지에 대한 사전조사다. 사전조사라 함은 숙소나 교통, 대충 가보고 싶은 곳의 지도조사 등이 포함되겠지만 이런 것은 사실 막상 닥치면 어떻게든 다 해결하게 되있다. 이런 것들보다 중요한 것은 당연히 목적지에 대한 배경지식이다. 사연이라든가. 역사라든가. 뭐 굳이 그런게 아니어도 내가 동경했던 사람이 살던 곳이면 이것도 배경지식이고, 동경했던 사람이 먼저 다녀온 루트면 이것 역시 충분한 여행의 목적이 된다. 그리고 사실 이런게 선행되지 않으면 여행은 단순히 관광의 차원에서 끝날 뿐이다. 여행지에 가서 유명한 곳에 들러 사진 한장 찍고 나오는 여행을 할 바에는 차라리 비싸기만 하고 여행의 질을 보장하지 못하는 패키지 관광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는 파리를 여행하면서 그래도 어줍잖은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곳을 들를 때마다 감회가 새로웠고 어설픈 관광을 하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으면 내 지식도 그저 얄팍했을 뿐임을 알게 된다. 보통의 해박한 지식과 그의 여행이 한데 어우러졌을때 비로소 이 책이 탄생한 거다. 그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윌리엄 워즈워스, 플로베르, 흄볼트, 등이 여행지를 더욱 상세히 소개한다. 보통은 내가 하고 싶은 방식의 여행을 이미 선행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여행을 하기 전에 목적지에 대한 공부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단순한 공부보다는 좀 더 광범위하게 어우러지는 지식을 가지고 여행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여행의 모든 순간마다 느끼는 감정들을 상세하게 묘사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보통의 개성이랄까? 뉴욕타임즈에서 말했듯이 보통은 누구나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깊게 고찰해 보지 않는 생각들까지도 그만의 언어로 재탄생시키는 재주를 가졌다. 그래서 항상 그의 책은 철학적이면서 한번 더 공감을 하게 하고 한번 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여행을 계획할 때 느끼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부터, 도착하고 나서 느끼는 세세한 현실, 그로인해 목적지에 몰입하지 못하는 모습, 결국 장소만 바뀌었을 뿐 '나'란 존재는 연속적이어서 머릿속에는 계속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점,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 이런 충분한 공감을 일으킬 만한 내용들이 1장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독자들을 한껏 흡인하는 것이다. 그 다음장 부터는 자신만의 엄청난 지식으로 선행했던 역사속 사람들과 함께 우리를 여행지로 데리고 간다. 내가 플로베르나 귀스타브, 고흐 등을 좀 더 잘 알았다면 보통의 여행에 한 껏 동참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이 사람들에 대해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이 책을 다시 한번 읽게 되면 나는 아마 이 책을 안고 이 책 속에 나오는 장소중 한 곳을 골라 여행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불지피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보통이 소개한 곳으로 여행을 갈 수는 없겠지만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나 하나 들고 우리 나라 일주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정말 아무래도 안되겠다. 나는 정말 여행을 좋아하나 보다.-분명히 말하지만 여행에 대한 동경도 여행을 좋아하는 마음 중 하나다-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여행지에서 느끼는 세세한 현실들-숙소나 식당에 대한 걱정-을 막상 도착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인 걸 보면, 꽤나 여행에 적합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젊어서 귀찮은 것을 개의치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나도 나이 들면 차를 가지고 다니는 좀 더 편안한 여행을 선호하게 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