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얼굴 표정이 그 사람의 인생을 대변한다.

gowooni1 2008. 9. 13. 20:21

 

항상 아기같은 마음으로 살면 곱게 늙지 않을까?

 

 

엄마와 함께 부평시장에 다녀왔다. 부평시장은 재래시장인데, 한번쯤은 가보고 싶기도 했던터였다. 뭔가를 사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어 한다. 재래시장을 안가본지도 몇년 된것 같아서 조금은 기대도 했다. 추석 대목을 앞두었던 터라 사람이 많을 것 같았지만, 큰 맘 먹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역시나 사람이 엄청났다. 내일이 추석인데, 아직도 한낮의 날씨는 여름같이 더웠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바글거리는 사람들이 시장입구부터 꽉 메우고 있었다. 재미있고 신기한 것을 구경하려던 내 기대는 접어두어야 했다. 저 인파를 꿰뚫고 지나가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전투적인 마음을 가지고 몸을 저 곳에 들이대야 할 것 같았다. 엄마는 뭐 당연하게 예상했다는 듯이 말한다."엄마 잘 따라 와, 놓치지 말고."

 

떡집마다 사람들은 줄을서서 송편을 사느라 바빴다. 도라지, 고사리, 가지 등 각종 나물을 파는 가게, 새우과 게 등을 파는 가게, 돼지고기 소고기를 파는 가게 등 어디 사람이 없는 곳이 없었다. 안 그래도 좁은 시장 길 한 가운데에도 장사진을 친 사람들 덕분에 한 사람만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이 양 쪽으로 두 갈래 나뉘어져, 사람들 흐르는 대로 가야했다. 어쩌다 역행해서 오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원성을 한마디씩 들어야 했다. 휴,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재래시장이 불황이라는 소리를 신문이나 TV에서 그렇게 많이 보고 들었지만, 오늘의 시장을 보면 거짓보도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는 사람 많은 것과 사람에게 치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편이라 뒤에서 빨리 가겠답시고 내 등을 조금만 건드려도 무척 불쾌해하는, 약간 까칠한 성격이다. 그런데 이 곳은 그런 까칠한 내 성격을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는 곳이다. 말 그대로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었다. 신경질을 낼 틈이 있으면 빨리 앞으로 가서 그 손을 내 신체 어느 곳에도 닿지 못하도록 피하는게 최선책이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겨우 견뎌내고 있는데 엄마는 무척이나 이 분위기가 익숙한듯이 씩씩하게 돌진하여 살 것은 사고, 지나칠 곳은 지나치며 목적을 착착 달성하는 것이었다. 역시 우리 엄마다. 항상 재래시장 예찬을 하던 엄마는 대형할인마트를 싫어한다. 이유는 단 하나. 비싸다는 거다. 사람 많은 틈에서 엄마한테 "엄마, 나는 아무래도 시장체질이 아닌가봐. 여기 사람들 너무 전투적이야, 느긋하게 구경할 여유가 너무 없어, 난 역시 마트가 좋아." 그랬더니 엄마 왈."여기가 정말 사람 사는 것 같고 좋지 않니? 활기차잖아, 사람사는것 같고.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은 마트도 사람 많은건 마찬가지야." 하긴 오늘은 어디든 사람 많겠네, 하고 생각했다.

 

모처럼 사람들, 그것도 중년의 여자들이 무척이나 많이 모인 곳에 가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얼굴에 눈길이 갔고, 그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비교하게 되었다. 세월의 풍파를 심하게 겪은 듯, 이미 얼굴에 쓸 수 있는 모든 인상을 다 써서 그게 하나의 표정으로 굳어버린 듯한 얼굴도 있었고, 얼굴에 심한 요철이 자잘하게 많아서 딱히 인상을 쓰고 있지 않아도 사나워 보이는 얼굴도 있었다. 항상 전투적인 분위기에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보려고 하던 사람들답게 전사의 얼굴이 아예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은 듯 했다. 피부는 나쁘지 않으나 굵직한 주름 8개 정도가 너무 깊게 패여서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와중에서 우리 엄마 얼굴은 나이에 비해 인상이 심하지도 않았고, 깊다할 주름도 없었으며, 요철이 있는 것도 아니니 무척이나 곱게 늙은 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인생이 그리 편한 인생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풍파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긍정으로 밝게 살아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얼굴이었다. 우리 엄마는 나 어릴때의 아름다웠던, 세상에서 제일 예뻤던 엄마의 얼굴은 이미 아니지만 여전히 고운 외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불쑥 내 뱉었다."엄마가 여기 아줌마들 중에서 제일 예뻐." 엄마는 화장도 하지 않고 썬크림만 대충 바른채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나왔지만, 내 말에 기분이 좋아진 듯 해 보였다. 엄마가 더 늙기 전에 나라도 피부관리를 자주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자연스럽게 10년 후, 20년 후의 내 모습을 생각하곤 하는데, 그런 생각들 중 하나가 얼굴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나이 40만 되면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대변한다는 말이 있다. 표독스러운 성격으로 40년을 살아왔다면 그 성격이 얼굴로 드러나 그 사람을 대변하고, 맑은 심성으로 산 사람이라면 당연히 맑고 깨끗한 표정이 그 사람의 얼굴을 장식할 것이다. 아직 내가 20대지만 피곤하고 살기 싫다는 마음가짐으로 3일만 살아도 그 마음이 얼굴로 그대로 드러나서 가끔 거울을 보면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아, 얼굴은 마음을 대변하는 거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3일이 아니라 1년만 더 지니고 살아도 아마 내 얼굴은 20대로 보이지 않겠지. 그리고 그 마음으로 40살까지 산다면 내가 선망하던 곱게 늙음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예전 MBC 스페셜에서 한복디자이너 이효재를 처음 봤다. 58년생인 그녀는 나이에 맞지 않는 수수함과 말투와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처럼 소녀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고, 웃고, 걷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얼마나 세상을 즐겁고 밝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긍정적으로 50여년을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저런 마음가짐으로 살면 저렇게 순수하고 곱게 나이를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꼭 마음을 잘 다스려서 표정까지 멋진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얼굴경영이란 말이 있다. 뭐, 약간 내가 생각하는 얼굴경영과는 다른 방면-관상-으로 사용되고 있는 듯하지만, 내 식대로 생각하고 싶다. 나는 얼굴경영을 잘해서, 40이 되면 내 내면에 어울리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이 기회에 얼굴경영이란 책도 한번 읽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