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2008.07.19-Essay of Love-알랭 드 보통

gowooni1 2008. 7. 19. 22:43

알랭 드 보통은 수필을 참 잘 쓴다. 근데 정말 철학적이어서 어려운 듯 한 수필을 쓴다. 쉽게 읽혀지도록 쓰는 그런 착한 작가가 아니라, 집중해서 읽어야 읽히는 수필을 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쓰여진 수필은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그가 사람의 공통된 심리를 잘 꿰뚫어 보기 때문 아닐까? 우리 모두가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감정들, 그러나 말로 표현하지는 않는 그런 추상적인 감정들을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여 언어로 바꾸어 놓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 그래서 보통의 수필을 읽고 있자면 그의 통찰력과 표현력에 놀란다. 일반인들이 감히 문자로 옮기지 못했던 복잡하고 예민한 감정들이나 심리를 보통만의 색을 띄는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접했던 그의 책은 [불안]이었다. 그런데 그 책은 내가 바랬던 관점에서의 불안을 쓴 것이 아니었고, 예시또한 재미있지 않아서 끝까지 읽지 않은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두번째로 읽어보려고 시도했던 책이 [여행의 기술]인데, 여행에 큰 관심을 가질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때라 이것 역시 몇장 안읽고 덮었다. 그러고 나서 난 '알랭 드 보통의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라는 생각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은 채 꽤 많은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러다가 내가 자주 가는 카페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는데 친구가 재밌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고 해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나는 이 책이 소설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손이 잘 안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실은 소설의 형식을 빌린 사랑에 관한 에세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저런 제목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원제목은 [Essay of Love], 즉 사랑에 관한 수필이다. 다 읽고 나서도 이것은 원제목이 더 작품에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출판해야 했던 우리나라 사정도 어느정도 이해는 갔다. 출판했던 시기가, 아직 알랭 드 보통에 관한 인지도가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높지 않았을 때이고, 원제로 출간했다면 재미가 없어보여 팔리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사랑에 관한 수필인데 당연히 사랑에 관한 예시를 적절히 들어가면서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주인공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주인공의 사랑 클로이는 잊을 수가 없다. 주인공이 항상 '클로이는 어쨌다, 클로이는 저쨌다.'로 말을 시작했으니 잊을리가 있나. 20대 남녀의 사랑이야기 속에서, 과정마다 녹아있는 남녀간의 상황과 심리들, 그리고 감정의 변화들을 어찌나 생생하게 그려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통찰력이란 정말 그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그리고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 책이 저자의 나이 25살에 쓴 책이라는 사실. 한편으로는 이 나이에 썼다는 사실을 알고 더 공감이 갔다. 이렇게 20대의 사랑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것은 20대일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30대가 되어서, 과거를 회상하며 썼다면 아무리 생생하게 쓰려고 해도 퇴색된 기억속에서 그렇게 정확한 묘사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읽은지 꽤 오래 되어서 독서 직후의 생생한 감정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때는 참 많은 것을 공감하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는데.. 시간내어 다시 한번 읽어봐도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이 탄력을 이어 여행의 기술도 꼭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