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있어야 할 자리

gowooni1 2015. 6. 29. 23:59

 

 

 

일 때문에 타 부서에 들러 물어볼 게 생겼다. 점심 시간이 끝난 직후 그 부서가 있는 3층에 들러 담당자를 만나 몇 가지를 물어보았는데, 내 질문이 바보같다고 느꼈는지 담당자는 짜증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요, 이건 이렇게 하세요."


나는 알았다고 말하고 사무실에 나와서 화장실에 가기로 했는데 우리 부서가 있는 4층 화장실에 가는 것보다 그 부서 바로 옆에 있는 3층 화장실이 더 가까우므로 그리 들어갔다. 볼 일을 보고 있는데 아까 그 담당자가 동료와 함께 양치질을 하러 들어와서 이런 저런 말을 하다가 결국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4층에 그 이상한 여자 있잖아. 그 여자가 아까도 와서 이상한 소리 하길래, 내가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하면서 뭐라 했어...."


그 이후로도 들려오는 험담은 분명 나를 향한 것이었을텐데, 당연히 좋은 소리는 아니었을거다. 나는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당혹감에 어찌할바를 몰랐다. 이미 볼일을 다 보았으니 나가고 싶었지만 나가면 저들과 마주치는 거고, 저들과 마주쳐봐야 서로 좋을 건 없어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저들의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내 흉을 끝까지 듣고 있어야 할 것도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림으로서 역으로 당혹감을 선사하는 유치한 복수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문을 벌컥 열고 나가 유유히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마음같아서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내 험담을 한 장본인과 눈 한번 마주쳐주고 싶긴 했지만, 그렇게 하면서까지 유유하게 넘어갈만큼 내게 뻔뻔스러운 내공이 쌓여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차라리 그냥 나오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나와서 친한 직원을 마주쳤는데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감정이 일어 방금 있었던 사건에 대해 말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손이 벌벌 떨리는 것을 보니 내가 어지간히 화가 나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친구에게 담담한 어조로 그 사건을 전달할 때에는 그 일이 다소 드라마틱하면서도 유치하게 느껴져 하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처럼 여겨졌다. 물론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오히려 화를 내고 열변을 토하며 내 편을 들어줬지만 당사자인 나 자신이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그 봉변(?)을 당한 자가 내가 아닌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에 대한 생각이 불쑥 들 때에는 기분이 가라앉는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하고 다녔기에 어떤 누군가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하면서 지칭하는 것일까? 내가 그동안 뭔가 일을 잘못하고 있었나? 그 사람 눈에만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의 기준에도 이상한 사람일까? 그렇다면 나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싸이코라고 지칭하는 수준의 이상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통용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 거지? 진짜 싸이코인 사람들처럼 '자신이 싸이코라 불리우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듯 강하게' 처신을 해야 하는걸까? 그렇다면 진짜 싸이코인 사람들의 내공은 얼마나 강한 것인가? 싸이코인 사람들에게도 정말 배울 점은 있었단 말인가? 생각은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깊어져서 나는 결국,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 마냥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그것조차 본받을만한 점이었다는 결론에 이를 지경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못 버티는데 다른 곳에서 얼마나 잘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건 지금 있는 곳이 나와 맞지 않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으로 옮길 자신이 없거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두려운 자들의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개성이나 능력이나 성격이 다르고 조직마다 분위기와 요구하는 자질이 다른데 지금 있는 곳에서 사랑을 받아야 다른 곳에서도 잘 적응하고 사랑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보편적인 기질같은 것이야 어느정도는 적용되겠지만. 그러나 요점은 '여기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과연 여기가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이건 인지상정이다. 나는 내가 생각했을 때 옳다고 생각하고 옳다는 방식으로 행동했을 뿐인데 그 방식이 그 조직에 어울리지 않다면 나는 분명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고작 그런 험담 한번 뒤에서 직접 들었다고 이렇게까지 결론을 내는 것은 물론 극단적이며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이 조직이 내게 더 이상의 성장 가능성이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을 때, 같이 인격적으로나 성품적으로 하향평준화를 요구할 때 내가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 마침 동기 모임이 있어 나간 자리에서, 한 동기가 다른 조직으로 거취를 옮긴다고 발표를 했다. 물론 그에게는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고 연고지와 가까워진 일이라 축하할 일이었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보다는 축하하는 감정이 앞섰다. 그러나 나와 다르게 다른 동기들은 섭섭한 감정이 먼저 들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제 같은 조직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상실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나는 마침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에 대한 다소 깊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그의 이동이 진심으로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내가 진정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자리를 옮긴다고 해서 이 고민이 해결은 될 것인가, 내가 진짜 바라는 일은 무엇이며 차라리 그 일을 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추진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또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이 이어졌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건은 연이어 이어졌다. 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지 7년이 넘게 지난 시점에, 각별했던 과장님이 부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깊이 고민할 시간도 없이 대전으로 달려갔다. 내게 박과장님은 조금 많이 각별한 분이었다. 2년도 다니지 않은 그 회사 생활에서, 아직 어리고 기고만장한 내게 앞가림 하도록 해주려고 많은 신경을 써주신 분. 회사를 그만두던 날 마지막 회식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는 내게 손수건을 건네주며 다시 만나자 하신 분. 그 손수건을 다시 돌려드리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꼭 찾아보아야 했던 분이다. 그간 연락도 없었지만 7년 반 가까운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대전으로 달려가니 늘 온화한 표정으로 아랫사람을 다독여준 그 얼굴이 그때 그대로 남아 조문객을 맞이하고 계셨다. 박과장님은 상을 당하여 슬프면서도 생각지도 않은 조문객을 맞이한 반가움이 오묘하게 섞인 표정으로 맞이하여 주셨다.


조문객 중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몇 명을 만나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반가움을 표하며 서로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우리 파트는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로 해체가 되어 없어졌다는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됐어요?"


내가 물었다.
다들 다른 계열사로 전배를 갔거나, 다른 기업체로 이직을 했다고 했다. 가장 성격 이상하고 오만했으며 여자를 좋아했던 오과장은 승승장구하여 부장이 되었으나 얼마전 성희롱 사건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단다.


"어쩐지 오과장다운 스캔들이네요."


"그렇지? 우리도 다들 그 얘기 했다니까. 그래도 어떻게 처신을 잘했는지 안 짤리고 조용히 넘어갔다더라."


천성이 연구직이었지만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 사교성이 전혀 없던 이대리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비용으로 박사를 마친후 교수로 자리를 옮겼댔다.


"이대리는 제 자리 찾아간거지. 회사 생활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어. 교수라면 모를까."


"이제와서 말하는 건데, 이대리는 회사 생활 오래 하면 왕따 당했을 사람이야. 진짜 사회생활 못하잖아."


사람들은 다들 옛날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소식을 전해들으며 약간의 험담도 섞고, 칭찬도 섞기도 했다. 그러다 내게 어떤 한 사람이 기억이 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사람과의 추억이 별로 없어서 이름도 가물가물했다. 그 파트에 배정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다른 계열사로 전배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은 왜요?" 내가 물었다.


"아, 걔가 너 진짜 싫어했는데. 툭하면 너는 대체 왜 그러냐고 짜증냈어."


다른 때 같은 경우라면 그냥 웃으며 넘어갈 일이었겠지만, 며칠 전에 내 험담을 직접 들은 사람으로서 그 말이 곱게 흘려지지 않았다.


"그래요? 나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도 없고 이름도 잘 생각 안나는데..."


나는 아무 느낌이 없었던 사람이 나를 싫어했다는 말을 전해들으면, 그것도 기분이 오묘하다. 이건 또 나름 굉장히 오래된 과거 아닌가. 똑같이 싫어하기엔 쓸데없는 감정소모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느낌없이 지나가기에도 뭔가 꺼림칙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에게 상처가 될만한 말이나 행동을 한 건 아닐까? 만약 그게 아직도 남아있어서 여전히 내 의도와 상관없이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그냥 무조건 싫어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건 어쩔 수 없다.


"그건 그렇고...박과장님은 아직도 과장님이세요? 7년 전에도 진급 누락이 꽤 됐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글쎄, 이제 잘 안되려고 그러는건가. 아마 박과장님도 메일 받으셨을지도 몰라."


"무슨 메일요?"


"진급 대상자가 아닌 사람들 중 45살 넘으면 메일 온다고 하더라고."


"아..."


"아까 조문왔던 그 인상 좋은 분 기억나지? 그 분도 진짜 사람은 좋았는데 몇 달 전 권고사직 메일 받고 퇴직하신 분이야."


"아..."


"회사란 게 참으로 이상한 거 같다. 좋은 사람들은 다 짤리고, 이상한 사람들만 잘 나가는 거 같아."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는 군데군데 소나기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내려갈 때 차가 하도 많이 막혀서 질린터라 차라리 빨리 집에 돌아가 쉬는 게 나을 거 같아 한번도 쉬지 않고 170키로 넘는 거리를 내리 밟아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했다. 도착해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 때에는, 얼마 전 화장실 사건으로 분노하던 것이 무척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분노하던 스스로가 작게 느껴졌다. 이미 머릿속에는 다른 화두가 들어서 있었다. 그 옛날 그만뒀던 그 회사에 속해있을 땐 한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고민-40이 되면 여기서는 이미 끝날텐데, 40 넘어서는 뭐하고 살지-을 지금 회사를 다니면서는 한 번도 심각하게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너무 안이하게 지내온 것이 아닐까. 얼마전의 고민들은 어쩌면 너무 사치스러운 고민 아닐까.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 모두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진정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내가 마음에 드는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 훨씬 시간 쏟을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귀점은 늘 생각하던 방식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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