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내 삶의 모양새가 마음에 드는 즐거움

gowooni1 2014. 12. 20. 15:31

 

 

 

지나고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최근 아팠던 경험은 내게 많은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지갑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처럼, 아프고 나봐야 건강의 중요함을 알게 된 전형적인 케이스가 바로 나였다. 눈만 감으면 땅으로 꺼지듯 깊이 빠져드는 잠, 발걸음 하나 움직이는 데 드는 힘겨움, 약간의 산책으로도 엄청나게 피곤해지는 몸, 자꾸 자꾸 잠에만 빠져들어 이러다가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아주 나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회복기에 접어들면서 돌아오던 체력, 아침에 일어나 오늘도 태양을 바라볼 수 있다는 다행스러움, 무언가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의 감사함, 다시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들, 자연적 회복력을 끝까지 발휘해 준 하나뿐인 내 몸의 소중함 등. 지혜로운 사람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도 깨달음을 얻을텐데, 난 아직도 좀 멀었나보다.


그래서 다시 건강한 자연인이 되었을 때, 그동안 안해봐서 후회되던 일들을 먼저 하기로 결심했다. 내일 당장 죽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저축은 남 좋은 일이었다. 내게는 아직 유산을 남겨줘야 할 후손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동안 모은 얼마 안되는 돈을 다 털어 하고 싶은 것에 사용하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모양새가 스스로의 마음에 들어야 했다. 그게 라이프 스타일이라면 그렇게 명명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그 단어는 내가 원하는 뉘앙스를 온전히 포함하지 못하므로,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삶의 모양새'라고 명명하겠다. 내 하루가 내 마음에 들기 위해서 나에겐 차가 필요했고, 그래서 신차를 구입했다.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내 모습 중 늘 마음에 걸렸던 것이 교정을 하지 않은 치아여서 당장 치아 교정에 들어갔다. 늘 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하던 공부는 가끔씩 '인생을 헛살지 않았구나'라는 기분을 안겨줬지만 대부분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으므로 그만 두기로 했다.


공부에 대해서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까지 이중적인 전략을 취해서 인생을 살아왔다. 즉, 생계를 위한 직업과 인생을 즐기기 위한 취미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만 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겨왔다. 또 그런 식으로 두 가지 이상의 삶을 영위해야 인생이 더 풍요로워 질 거라고 믿었다. 내가 한 공부들은 생계를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껏 내 전공을 통해 먹고 살아왔고 기왕이면 전공을 더 공부해서 몸값을 높이거나 사업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자격을 갖추는 게 현명한 인생 방식이라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분야는 따로 있으며 만약 생계를 위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당장이라도 공부나 직업을 그만두고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일만 하고 싶다고도 생각해왔다.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돈벌이를 위한 일이 되면 안 되었다. 만약 여기서 실패하면 나는 직업도 잃고 취미도 잃고 이도 저도 안되는 상황으로 전락해버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아마 대부분의 일반인이 나와 같지 않을까?)


그런데 막상 아파보고, 사람이 생이라는 게 생각보다 짧으며,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어쩌면 무한대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중적으로 사는 인생이 현명하다기보다는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몸 값을 올려놨는데 죽어버리면, 대체 하고 싶은 일은 언제 하느냔 말이다. 내일 당장 죽는데도 먼 미래를 위해서 생계형 공부만 하고 있을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느냐고. 그냥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다 죽는 것이 인생 사업에서 훨씬 남는 장사가 아닐까? 그렇게 되면 어쨌든 내일 당장 죽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수 있을테니까. 결국은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연설의 핵심과 같은 결론이 나오고 말았다. 내일 당장 죽는다고 가정할 때 여한이 남을 만한 일은 하지 말고, 인생 즐기며 잘 살았다고 마음 편히 눈 감을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


그래서 매일을 어제보다 더 마음에 드는 오늘의 인생을 만드는데 힘을 쓰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모처럼 내일이 기다려져 새벽에 눈을 일찍 뜨는 날이 종종 생겼다.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 '아침이여 어서 내게 오라'고 외친 정주영 회장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람, 하고 조금 우습기는 하는데 그 기분은 심히 즐길만하다. 내 삶의 모양새가 좀 더 마음에 들어가는 즐거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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