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오랜만에 듣는 이름, 세스 고딘. 그는 한 때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으로 대한민국 서점가를 강타했는데, 그 무렵 마케팅이나 자기계발 서적에 그다지 흥미가 없던 나로서는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면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작가였다. 당시 입사했던 회사에서 신입사원들에게 퀴즈를 냈고, 그 퀴즈를 맞춘 5명에게만 특별히 상으로 하사했던 책 중 하나였던 것이다. 보라색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책을 가지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머니볼'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보랏빛 소가 온다'가 마케팅 서적류인줄 알고 그나마 향후 6년은 거들떠도 안 본 '머니볼'을 받은게 차라리 나았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이카루스'를 언급하며 대중 자기계발 서적 시장으로 한 번 더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이 나도 바뀌었을 거고(자기계발 서적에 흥미도 좀 생겼고) 작가도 10년 전 책과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할 터이다. 우리 말로는 '이카루스 이야기'라고 번역되었기 때문에 이게 대체 무엇을 전달하려는 의도인지 언뜻 파악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어 제목을 보면 좀 감이 온다. The Icarus Deception, 즉 이카루스 기만 혹은 허상 정도 되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카루스 이야기는 사실 대중들을 기만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울좋은 신화라는 설명의 시작으로 핵심을 전달한다.
미노스 왕의 뜻을 거역한 댓가로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옥에 같인 다이달로스는 못 만드는 게 없었는데, 감옥을 탈출하기 위하여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이카루스에게 주었고 그 날개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밀랍 날개로 하늘을 나는 것에 도취된 이카루스는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는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귓등으로 들은 채 계속 위로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을 이기지 못한 밀랍 날개가 녹아버리고 말았다. 이카루스는 이카리아 해에 빠져 죽어버렸고 이 신화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교훈을 남긴다. 주제도 모르고 너무 날뛰다가는 크게 다치거나 혹은 죽는다.
여기서 호크아이 세스 고딘은 이렇게 말한다. 이카루스 신화는 너무 태양 가까이 날지 말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낮게 날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우리 일반 사람들은 알아서 긴다. 지나치게 수면 위로 낮게만 날아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제대로 파악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 일반인들이 원하는 건 단순하다. 그저 좋고 안정적이고 편안한 일자리, 그런 것이 주는 심리적인 만족감. 변화는 무섭고 두려운 것이며 자기 목소리를 내어 튀는 존재가 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다. 가능하면 사람들과 비슷한 존재가 되어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안전하게 살아가는 게 현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그건 산업경제 사회에서나 어울리는 행동이다. 산업경제에서는 조직의 부품이 되어 조직의 생산력을 극대화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으나 요새는 산업경제 룰이 절대적으로 통하지 않는 세대다. 고딘은 요즘 경제를 이렇게 명명한다. 연결 경제. 사람과 사람과의 연결이 가장 중요하고 감정을 바탕으로 경제가 활성화된다. 연결경제에서는 조직의 부품으로 전락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 반대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추구하여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예전에는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힘있는 출판사의 간택을 받아 로비도 하고 해서 책을 많이 팔수 있는 판로가 전부였다면 요즘은 그런 판로가 힘있고 유능한 작가가 되는 전부가 아니다. 자신이 직접 글을 써서 인터넷 매체를 통해 꾸준히 활동하고 스스로 판로를 개척할 수 있다. 자신을 원하는 독자들이 많은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예전에 배우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유명한 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처럼 보였지만 요즘은 스스로 청중을 선택하여 자신이 원하는 연기나 노래를 할 수 있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또 유투브에 올려졌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런식으로 스스로 만든 사회적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게 되면 유명한 회사나 기획사들이 오히려 그들을 찾아오는 구조가 된다. 이런식으로 스스로 연결점을 찾고 감정을 서비스 할 수 있으며 경제적인 효율성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연결 경제다.
그런 연결 경제의 중심에 있으려면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순응을 요구하는 사회의 못마땅한 시선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고 또 그것을 꿋꿋하게, 꾸준하게 해내 갈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아티스트다. 진짜 아티스트라면 겸손 따윈 집어치우고 자만을 하라고 말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소리는 옛체제에 굴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진짜 아티스트는 끊임없이 자신의 모를 갈고 닦아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체제에 복종하지 말고 말도 안되는 관습에 불충해야 하며 오직 충성을 다할 것은 자기 자신 내면의 목소리 뿐이다. 그렇게 오직 하나뿐인 자신이 되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런 감정노동을 통해 수없이 많은 연결고리를 창출하여 이 시대에 맞는 부를 얻고 '진정으로 최선을 다 해 살았다'는 느낌을 주는 인생을 살 것.
어떻게 보면 이 책은 현대판 Self-reliance(랠프 왈도 에머슨)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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