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거리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녀가 말했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좋진 않아. 왜냐면, 나에게 있어 여행은 그냥 일상이거든. 너처럼 도피하는 마음으로 여행하지는 않아."

"그렇다면 네 말은, 내가 현실에서 도망가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여행을 한다는 거야?"

"사실 그렇잖아? 나는 네게서 그런 느낌 많이 받는데."

나는 조금 화가 났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여행을 하는 것이 맞긴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도망가고 싶어 그런건 아냐. 비행기가 이륙해서 내가 살던 곳이 한 눈에 굽어볼만큼 작은 곳이란 걸 아는 순간, 그리고 내가 속하지 않은 곳을 거닐면서 내가 모르던 세상도 이렇게 다양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아는 순간, 내가 속해 있던 세상의 자잘한 희노애락들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제법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삶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거지."

"그렇지만 결국 네가 발 붙여 살아야 할 곳은 그 자잘한 희노애락이 가득한 세상이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현실도피라는 거야. 난 결국 그 문제들로 돌아오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어딘가로 떠나더라도 내가 속한 곳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해. 또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래서 난 여행을 가도 안가도 그만인거야."

그렇지만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정신 건강에 좋은 때가 있는 거라고, 너에게 있어 여행은 일상의 문제를 안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상과 다를바가 없겠지만 나에게 있어 여행은 자잘한 문제를 놓고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기 때문에 일상과 다를바가 없는 거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순간 생각이 멍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