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나쁜소녀의 짓궂음

gowooni1 2012. 1. 1. 22:36

 

 

 

 

페루 중산층들이 몰려 사는 미라플로레스 거리. 평범한 중산층 소년 리카르도는 어느날 등장한 칠레 여자아이에게 매력을 느낀다. 릴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그녀는열 네댓살 정도였는데, 정숙한 페루 여자아이들과 달리 짧은 치마를 입고 몸의 곡선이 드러나는 차림새를 하며 남자 아이들을 유혹한다. 리카르도는 릴리에게 사귀자고 세번을 청하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만다. 그녀는 자신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남자아이를 사귀어선 안된다는 말로 리카르도 및 기타 남자아이들의 구애를 거절한다. 어느날 같은 반 여자아이의 생일파티에서 릴리가 칠레 여자아이란 건 거짓이며 칠레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릴리는 곧 미라플로레스 거리에서 잊혀지고 만다.

 

리카르도의 유일한 소원은 페루가 아닌 파리에서 사는 것. 그 도시에서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던 그는 모든 학업을 마치고 파리로 건너와 번역과 통역일을 하며 파리에 거주하기 시작한다. 리카르도가 파리에 거주하기 시작하던 무렵 쿠바 혁명을 따라 페루에서도 혁명을 일으키려 하는 사람들이 세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당시 파리는 페루에서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쿠바로 훈련을 받으러 가는중 중간 지점이었는데 거기서 리카르도는 칠레소녀를 만난다. 모처럼 만난 칠레소녀는 쿠바에 훈련을 받으러 가기 위해 잠시 파리에 들른 것이지만, 리카르도가 봐도 그녀는 단지 페루에서 유럽으로 도망치기 위해 혁명 세력에 가담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리카르도가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 구애를 했는지 잘 기억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이 칠레 소녀 행세를 했다는 말은 완강히 부인한다. 칠레소녀는 주인공에게 자신이 쿠바로 가지 않도록만 해준다면 그와 기꺼이 결혼을 하겠다고 말하지만 능력이 부족한 리카르도는 그녀를 쿠바로 보낼 수밖에 없다.

 

십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 서른의 문턱에 다다를 무렵, 리카르도 앞에 멋진 숙녀가 나타난다. 이미 파리에서 먹고 살만큼의 일거리와 거처를 얻었으니 일생의 목표가 이루어진 그에게 부족했던 건 바로 칠레소녀. 그러나 파리에서 만난 칠레소녀는 더 이상 돈없고 조잡한 옷이나 입고 다니는 소녀가 아니었다. 로베르 아르누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귀부인처럼 멋지게 차려입고 세련되게 액세서리를 달고 거리를 누비는 그녀는 프랑스 외교관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리카르도는 미치도록 질투하고 그녀를 갈망하면서도 자신을 하찮은 인간으로 대하는 나쁜소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로베르 아르누 부인은 가끔씩 그의 아파트로 와 몸을 허락하고는 하지만 결국 돈과 최상위 계층의 삶을 향해서만 나아갈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최대의 소원이 자신을 얻는 것밖에 되지 않는 착한소년에게 머물수 없는 거라고 매정하게 말한다. 그러던 어느날, 로베르 아르누 부인은 착한소년의 집에 겔랑 칫솔 하나를 남겨두고 잠적을 한다.

 

또 오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나타난 나쁜 소녀의 모습은 이제 최상위 중의 최상위 계층, 영국 명문 귀족의 아내였다. 그녀는 자신 앞에 나타난 착한 소년에게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이점을 이용한다. 스무살이나 많은 남편들이 해줄 수 없는 쾌락을 그에게 요구하며 리카르도의 구애를 즐긴다. 런던의 호텔들에서 밀회를 즐기던 그들은 어느날 심하게 싸우고, 나쁜 소녀는 더이상 착한 소년을 만나지 않을 것을 암시하며 헤어진다. 그런 식으로 칠레 여자아이는 리카르도의 삶에서 네 번째로 종적을 감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흔이 넘은 리카르도는 아직 정력이 있고 유능한 통역사 및 번역가로 유네스코에서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 친하게 지내던 통역사 하나가 일본 미쯔비시 사에 일년 계약으로 전속되어 떠났는데 그 친구로부터 기가 막힌 소식을 하나 받는다. 이번에 등장한 나쁜소녀는 일본 야쿠자의 정부가 되어있던 것이다. 어떻게든 그녀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본에 가려고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겨우 겨우 서울을 거쳐 도착한 일본에서 만난 나쁜소녀는 이미 마흔이 넘었을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냘프고 여리여리한 몸에 탄력있는 가슴과 빛나는 꿀색 눈으로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어딘가 지쳐보이는 기색이 어렸지만 리카르도는 그게 단순히 나이탓이라고 여긴다. 일본 야쿠자의 정부가 된 그녀의 이름은 구리코. 구리코는 지금까지의 패턴과 맞지 않게 이상하리만큼 그를 환대하고 그녀의 남자인 후쿠다 역시 그에게 무뚝뚝하나 극진한 대접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변태성욕자인 후쿠다에게 리카르도와의 성교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자신의 남자에게 쾌락을 선사하려던 구리코의 농간이었음을 안 리카르도는 다음날 당장 파리로 떠나고 다시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후반부에서는 지금껏 수수께끼 같았던 나쁜 소녀의 실체가 조금씩 밝혀진다. 늘 잠깐의 사랑놀음을 했다가 사라져버리는 칠레소녀, 혁명가, 외교관 아내, 영국 귀족의 아내, 일본 야쿠자 정부였던 나쁜소녀가 지금껏 해왔던 말이나 행동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무엇때문에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말하면서 그것이 스스로도 진실이라고 믿었는지에 대한 씁쓸한 과거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알고 이해해도 여전히 리카르도는 나쁜소녀를 사랑하며, 자신이 나쁜소녀를 죽음 직전에서 살려낸다 한들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남자에게 가버릴 걸 뻔히 아는 데도 리카르도는 끝까지 그녀와 함께 간다. 자기 삶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러서야 정숙한 리카르도의 아내로 살겠다고 돌아온 나쁜소녀는 고작 삼십 칠일 살다 가는데, 그런 그에게 해주는 위로란 것도 이런 것이다. 넌 항상 작가가 되고 싶어했고, 내가 네 밋밋한 삶에 괜찮은 글감을 던져줬으니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고, 앞으로 자신이 없는 인생을 보내기엔 충분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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