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경향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내가 책과 친해지게 된 최초의 계기는 만화다. 본능적으로 활자보다 그림을 선호했다는 이 결정적인 증거 때문에 한동안 난 스스로가 스토리에 매료되는 편인지 그림에 매료되는 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더 정확히는 만화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이었다. 애니메이션은 여러가지 감각을 만족시켜 주었다. 아름다운 그림체로 시각을, 풍성한 음향 효과로 청각을, 긴장감 넘치는 플롯으로 감동까지 안겨주었다. 시각적인 것에 약했던 나는 애니메이션은 봐도 영화는 잘 안 봤는데 영화에는 애니메이션처럼 현실을 정화시킨 아름다운 영상보다 있는 그대로를 비추는 과도한 리얼리티가 있었다. 만화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눈과 코, 입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점과 기미, 여드름, 넓은 모공 같은 잡티에 노화의 흔적들마저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나는 이상을 좌절시키는 현실보다 기분 좋은것들로 시각적 감각을 충족시키고 싶었고 그런 면에서 현실 미화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만화의 매력을 따를 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매료된 애니메이션은, 원제가 괴도 세인트 테일, 우리 나라에서는 천사소녀 네티로 번역되어 방송된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14살인가 15살인가 하는 소녀가 낮에는 평범한 여중생으로 지내다가 밤에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의 사도가 되어 괴도로 활약한다. 소녀는 공부는 못하지만 운동 신경 하나만큼은 따를 자가 없었는데 이 탁월한 운동 신경으로 도둑질을 한다. 부당하거나 불쌍한 사람들이 제일 친한 수녀 친구에게 고해성사나 고민을 털어 놓으면, 이 도둑 소녀는 밤에 괴도의 복장을 하고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부당하게 빼앗긴 물건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 백전 무패의 괴도 소녀에게도 나름 아킬레스 건이 있다. 바로 같은 반 친구이자 엘리트인 남자 아이. 남자 아이는 정의를 사수하겠다는 사명을 안고 괴도 세인트 테일을 반드시 잡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현장을 뛰어다니지만 번번이 실패만 한다. 소녀는 소년이 자신을 꼭 잡겠다며 쫓아다니는 것을 즐기면서도 정말로 자신이 잡혔을 때 소년이 실망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한다.
이 애니메이션의 클라이막스는 소년이 소녀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그 날도 세인트 테일을 잡는데 실패하고 밤새 비를 맞으며 많은 생각을 한 소년은 자신이 소녀를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른 아침 무지개 후광을 등에 지고 나타나는 소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고 소녀 역시 감동에 눈물을 흘리는데, 이때부터 소녀의 고민은 더욱 증폭된다. 바로 자신이 괴도 세인트 테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소년이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마음과 너가 그토록 쫓아다니는 도둑이 사실 바로 나라고 말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갈등한다. 두 소년 소녀의 줄다리기와 낮에는 평범하지만 밤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주인공의 이중생활이 하도 매력적이어서 엄청난 감정이입을 하며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를 수십 번씩 반복해 보곤 했다.
그 이후로 학창 시절은 애니메이션과 만화에서 삶의 쾌락을 얻으며 지냈는데, 성인이 되고 꿈보다 현실을 헤매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점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는 일이 뜸해졌다. 꿈보다 현실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는 접근하는 영상매체에도 변화가 생김을 의미했다. 애니메이션보다 영화와 드라마로 스토리의 감동을 얻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일정한 패턴도 생겼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 때면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영화와 드라마를 보았다. 의도하지 않은 절충의 시간들은 한가지에서만 스토리를 접하는 좁은 습관을 넓히는 데 일조해서, 독서 패턴을 바꿔 그림에만 애착을 갖지 않고 활자에 애정을 붙이기 시작했다. 만화책만 보다가 그림 없는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나름대로 생긴 지론은,정말 괜찮은 애니메이션인지 알려면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어릴적에 푹 빠져서 보았던 애니메이션이라면 어른이 되고 나서도 몰입될 수 있을 만큼은 되어야 한다. 분명 어릴 때는 꿈에서도 나올만큼 몰입해서 보았던 애니메이션이, 그 분위기와 감동이 그리워 성인이 되어 보았을 때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성인이 되어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생각하는 머리가 발달되었기 때문에 예전에 갖지 못한 비판적 사고 능력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억지스러워 '저건 말도 안돼' 라는 생각이 든다면 보는 사람에게 설득력이 없다. 반면 분명 어른이 되어서도 푹 빠져 볼 만큼 생생한 감동을 전달해주는 애니메이션도 있다. 이 경우엔 어릴적 보았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계속 발견한다. 어릴 적엔 단순히 등장 인물들의 감정 교류만 감지했다면 성인이 되어 다시 봤을 땐 스토리를 뒷받침해주는 장치들의 탄탄함들이 감동을 더한다. 감동을 선사하려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똑같은 애니메이션이라도 어릴적 봤을 때의 감동이 다르고 어른이 되었을 때의 감동이 다르다면, 어릴 때 더 많은 애니메이션을 봐둘걸 하는 약간의 아쉬움. 그렇지만 학생 때의 모든 푼돈을 거기에 쏟아부은 열정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많이 봐둘 수는 없었을 거라는 자기합리심리. 어쨌거나 무언가를 많이 보고 좋아했다면 그게 나중에라도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든든한 밑바탕이 된다는 진리를 얻은 게 뭐니뭐니해도 최대의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