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Traveling-Outside/★호주Australia-Cains

고시래

gowooni1 2010. 8. 31. 20:31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는데 아침에 눈이 단박에 떠졌다.

유난히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전자 시계를 확인해보니 일곱 시 반.

그리 일찍 일어난 건 아니구나 하품을 하며

어제 먹다 만 바게뜨와 새빨간 사과 한 알을 들고 조용히 테라스로 나가

조금씩 빵을 뜯어 먹는데 아주 익숙하게 생긴 새 한 마리가 저 멀리서

고개를 앞으로 콕콕 찍으며 자근자근 걸어왔다.

녀석의 발걸음이 이쪽을 향하고 있는 걸 본 동료 비둘기 한 마리 두 마리가 합세하여

순식간에 다섯 마리가 내 빵을 노리는 정적이 되었다.

많은 욕심도 아니고 먹고 살겠다는 본능의 애처로운 눈빛을 외면할 도리가 없어

나름 잘게 뗀다고 떼어낸 빵조각을 다섯 마리 사이로 던졌다.

그러자, 어디서 보았는지 후두두두둑,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주위로 모여든 비둘기가 무려 이십여 마리는 되어 보였는데

그 좁은 테라스 마당 안에 한꺼번에 모여 오십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동네 비둘기는 다 불러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차, 하는 순간

비둘기들은 내가 앉아 있던 의자 앞 테이블 까지 점령하고 말았다.

비둘기 조련사가 된 기분으로 빵을 나눠주고는 잠깐 안으로 들어가

커피 포트에 물을 끓여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어 다시 나왔는데

내가 먹다 만 두툼한 사과 기둥이 없어지고 말았다.

 

고시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