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나를 이끌어 주는 세 사람

gowooni1 2009. 6. 5. 19:16

 

                                

                                                        <헤세, 프롬, 코엘료>

 

나는 공공연하게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헤르만 헤세와 에리히 프롬이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당연히 가장 좋아하는 책은 데미안(헤세 작)과 소유냐 존재냐(프롬 작)라고 한다. 한 사람이 지닌 가치관이나 우선 순위라는 것이 그 사람이 인생을 살고 성장하는 정도에 있어서 당연히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런 나의 우선 순위들이 죽을 때까지 영원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데미안은 벌써 10년이 넘도록 이 순위에서 밀리지 않고 있으니 나라는 인간이 끌리는 가치는 의외로 변하지 않음을 깨닫고 종종 놀란다.

 

시종일관 헤세를 좋아한 건 아니다. 헤세의 전 작품에 일어나는 레퍼토리인 정반합과 일치하게 내가 헤세를 진정 좋아하게 된 과정도 그러하다. 처음에 데미안을 보고 반했다(정). 데미안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다른 작품의 주제가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이 작가는 이런 작품세계밖에 없는 건가, 하고 실망했다(반). 그러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한 번 데미안을 읽었을 때 여전히 그 작품 세계가 품어내는 오우라에 매료되었다. 아니, 오히려 그 전보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에 감동의 폭이 더욱 커졌다. 그래서 헤세의 전 작품 세계를 좋아하게 되었다(합).

 

헤세만 그러한 게 아니다. 많은 작품을 쓴 작가들일수록 이상하게도 그들의 작품들은 비슷비슷하다. 소재가 다르고 등장인물이 달라도 작품의 분위기나 주제가 전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키운 것도 있겠지만, 만약 내가 소설을 쓴다면 거기서 거기인 작품을 쓰고 싶지는 않다고도 생각했다. 첫번째 작품이 두번째 작품에 비해 악평을 받더라도, 첫번째 작품과 두번째 작품을 쓴 작가가 동일인물인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을 쓰고 싶다. 작품마다 다르고 독특한 세계가 풍겨나오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최근들어 조금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반하는 류의 책이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졸작이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이라면 거의 다 감동을 하는 편인데도 유난히 마음이 이끌려서 10번 20번은 더 보게 되는 책들, 나중에는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순서대로 기억하는 책들이 대부분 같은 주제를 말하고 있었다. 실망했다. 독자는 자신이 가장 읽고 싶었던 부류의 책에 이끌리는 법이고 저자는 자신이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을 쓰게 마련이다. 내가 가장 읽고 싶은 부류의 책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내면의 과정을 그린 소설들이고 그래서 여지없이 데미안이나 유리알 유희, 소유냐 존재냐 같은 책을 손에 들고만 있어도 행복해지고 만다. 최근 들어서는 여기에 파울로 코엘료와 연금술사, 포르토벨로의 마녀까지 끼워 놓고 싶어진 것을 보면 결국 내 취향도 거기서 거기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않는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람의 가치관이란 시간과 장소와 만나는 사람에 따라 언제든 바뀔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가장 끌리는 것에 마음껏 끌리는 삶을 살면 그걸로 족하다. 내가 만약 현재 작가가 되어서 소설을 쓴다면 위의 작품들처럼 진정한 자신,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삶을 살라는 주제의식을 가진 소설을 쓸 것이다. 그것이 내가 현재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주제이고 가장 많이 읽고 싶은 주제이니까. 비슷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런 주제를 가진 소설이나 영화, 만화가 있다면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살고 있는 단계가 오면 분명 달라지리라 믿는다. 그때는 뭔가 또 다른것이 나를 이끌 것이고 그럼 난 또 그것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때도 만약 내가 작가라면 분명 지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주제를 가진 책을 쓰고 싶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