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세상이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되고 싶은 건 많았는데 될 수 있는 게 없었고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전부 막연하여 뭘 진짜 원하는지도 몰랐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연명하는 게 하도 지겹고 지루해서
훌쩍 떠나기로 했다.
아무 계획도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무작정 지금 당장
이 도시에서 가장 멀리 떠날 수 있는 곳으로 가보기로 결심했고
그건 공교롭게도 밤을 달려 새벽에 떨어지는 여수행 기차였다.
새벽 네 시에 생판 모르는 도시에 떨어진 소녀는
막상 도착하니 조금은 무서워져서 택시를 잡고 근처 피씨방에 들어갔다.
졸린 걸 겨우 참아가며 첫 버스가 다닐때까지 기다린 다음
밖으로 나와 향일암 가는 버스를 탔다.
여수에서도 다리를 건너 돌로 된 산을 비이잉 돌아 가야 하는
그 절에 가는 도중 벌써 해가 뜨고 있었다.
일출에 대한 마음은 진작 비웠고
인적없는 버스의 종점에 내려 가파르게 언덕진 골목을 올라
한도 끝도 보이지 않는 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세상과 동떨어진 것 같은 암자에 다가갔다.
그런데,
계단은 높고 눈은 감기고 등엔 땀이 나는데
공기는 상쾌했고 들이마시는 숨이 달고 기분은 괜히 좋아졌다.
대웅전 앞 돌계단을 올라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언젠가 무언가가 되어 있을 때 다시 한 번
이 곳에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무언가가 되어 있을 때.
그 다짐은 이번에도 결국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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