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Traveling-Korea/전라도Jeolla

향일암

gowooni1 2012. 5. 22. 00:22

소녀는 세상이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되고 싶은 건 많았는데 될 수 있는 게 없었고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전부 막연하여 뭘 진짜 원하는지도 몰랐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연명하는 게 하도 지겹고 지루해서

훌쩍 떠나기로 했다.

아무 계획도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무작정 지금 당장

이 도시에서 가장 멀리 떠날 수 있는 곳으로 가보기로 결심했고

그건 공교롭게도 밤을 달려 새벽에 떨어지는 여수행 기차였다.

새벽 네 시에 생판 모르는 도시에 떨어진 소녀는

막상 도착하니 조금은 무서워져서 택시를 잡고 근처 피씨방에 들어갔다.

졸린 걸 겨우 참아가며 첫 버스가 다닐때까지 기다린 다음

밖으로 나와 향일암 가는 버스를 탔다.

여수에서도 다리를 건너 돌로 된 산을 비이잉 돌아 가야 하는

그 절에 가는 도중 벌써 해가 뜨고 있었다.

일출에 대한 마음은 진작 비웠고

인적없는 버스의 종점에 내려 가파르게 언덕진 골목을 올라

한도 끝도 보이지 않는 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세상과 동떨어진 것 같은 암자에 다가갔다.

그런데,

계단은 높고 눈은 감기고 등엔 땀이 나는데

공기는 상쾌했고 들이마시는 숨이 달고 기분은 괜히 좋아졌다.

대웅전 앞 돌계단을 올라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언젠가 무언가가 되어 있을 때 다시 한 번

이 곳에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무언가가 되어 있을 때.

그 다짐은 이번에도 결국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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