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봤을 땐 차가웠다.
하도 차가워서, 그녀가 남들에게 베푸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그건 착각이었다.
그녀는 정이 많았고, 외강내유의 표본이었다.
그녀가 베푸는 걸 좋아하는 건
누군가에게 베풀어지는 걸 지나치게 수줍어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이 정말 그것을 즐기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일 하는 것을 좋아했고,
EQ 지수가 낮은 사람을 싫어했다.
똑같은 걸 보고 감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정을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소통을 중요시 여기는 그녀에게
감성은 중요한 지표였다.
그녀는,
얼굴 본 지 오래 된 친구와 통화 중
무심결 들은 초콜릿 먹고싶다는 소리에
당장 마트로 달려가 허쉬 자이언트 초콜릿 몇개를 포장하여
다음날 소포로 보내는 여자였고,
혼잣말하듯 피자 먹고싶다는 소리에
어느 샌가 피자를 주문해 30분 안에 내놓는 여자였다.
미국에 건너간 친구의 카카오톡 하고 싶다는 소리에
아무런 망설임없이 단박에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여자였다.
그녀 자신은 전자기기에 전혀 관심도 없으면서.
그녀는 배 아프다는 소리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일 년의 시간을 거슬러
핫팩을 한아름 사들고 오는 그런 여자였다.
처음으로 핫팩을 배에 붙이고 출근을 한 날,
온종일 뜨거웠다.
아무리 바깥 바람이 차가워도 몸 한구석 어딘가 따스하게 기댈 곳 있다는 사실이
마치 그런 존재가 곁에 늘 있음을 상기해주는 것 같아서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코트를 입고 다니지 않아도 핫팩만 배에 붙어 있으면 끄덕없을 것 같았다.
핫팩의 평균 지속시간은 12시간,
배가 뜨끈한 시간은 24시간,
마음이 뜨거울 시간은 측정불가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
'소소한 일상-Daily > 일상-생각-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식처 (0) | 2012.02.12 |
---|---|
장르소설의 묘미 (0) | 2012.02.05 |
MADEMOISELLE (0) | 2012.01.21 |
상실 (0) | 2012.01.19 |
바닐라라떼 (0) | 2012.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