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너와 함께 하는 여행

첫 놀이동산

gowooni1 2020. 10. 16. 17:57

싱가포르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갔을 땐 거기 날씨답게 엄청 습하고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원래 테마파크라는 곳이 환상의 이미지를 심어주니까 싫어할 사람이야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그 분위기를 먼저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영화보다도 애니메이션을 훨씬 좋아하기 때문일 거다. 마다가스카르 OST가 흥겹게 들려오고 여기저기 캐릭터들이 진짜처럼 서 있는데, 애니메니션의 한가운데로 폭 빠진 것 같은 착각. I like to move it, move it이 들려올 때마다 고개가 앞뒤로 흔들거리며 없던 흥마저 솟아올랐다. 나중에 아기가 생기면 꼭 같이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그곳에서 처음 어렴풋이 했다.


그러다가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 건 역시 아기가 태어나고부터다. 아직 돌도 안 된 아기를 돌보면서, 아기가 크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차례대로 보여준 다음 전 세계에 있는 디즈니랜드를 투어 해야지, 제일 접근성이 좋은 디즈니랜드는 역시 홍콩이려나, 아기랑 가는 여행이면 아무래도 무리하면 안 되니까 리조트 안에 있는 호텔을 잡아야겠구나, 한 다섯 살 무렵이 좋겠어, 등등 혼자만의 계획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례 없는 코로나 사태가 길게 이어지면서 홍콩은커녕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도 마음껏 오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쯤 되고 보니 마음껏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시절이 굉장히 대단하게 느껴지는 거다. 아이는 벌써 커서 네 살인데, 디즈니랜드 및 유니버셜 스튜디오 투어를 네다섯 살에 하기는 글러 보이고, 아이와 함께 하려 했던 즐거움이 하나 줄어서 어쩐지 좀 슬펐다. 그렇게 낙심하는데 비도 정말 길게 오고, 반은 우울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해외만을 생각했지? 국내에도 훌륭한 대체제가 있지 않나?


지긋지긋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가을을 흠뻑 느낄 수 있던 파란 하늘의 아침이었다.

"얀아, 우리 에버랜드 갈까? 기린이랑 팬더도 있고, 사자랑 호랑이도 볼 수 있어!"

"응!"

아이는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했다. 나의 즉흥적 한마디에 얀이의 첫 테마파크 행이 결정되었다.


네 살 남자아이와 테마파크에 간다는 것은 대략 이런 거다. 아이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싶어 하고, 신기해하고, 갖고 싶어 하고, 달려가고 싶어 하고, 기다리기 싫어하고, 그래서 가끔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거짓말로 꾀를 부린다. 아직 키가 작아 탈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데도 다 타보고 싶어 한다. 그래 봤자 탈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동전 넣고 타는 자동차 정도지만. 나와 남편도 나이만 먹었지 부모로서는 네 살 쪼랩이므로 모든 것이 처음이다. 가령 우리끼리 왔던 에버랜드는 주로 놀이기구를 타는 것인데, 아이와 함께 오는 에버랜드는 구경, 특히 동물 구경이 위주가 된다. 에버랜드에 와서 동물을 구경해 본 적이 과연 있던가? 직접 차를 타고 동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사파리와 로스트밸리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에버랜드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동물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세계에서 두세 번째로 크다는 온갖 종류의 거북이들, 이름도 생소한 설치류들, 얼굴이 호두만 한 다람쥐 크기의 원숭이들, 알록달록하고 고급져 보이는 새들, 얼마 전에 출산을 한 팬더들, 에버랜드를 기린 천국으로 만들었다는 암컷 기린들, 어린 왕자에 나오는 귀여운 사막여우들 등등. 모든 것을 처음 보는 아이의 눈으로 보니 정말 새로운 게 너무 많은 거다. 그리고 당연히, 이 모든 것은 엄청난 강행군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카시트에서 곯아떨어진 아이를 보며 내가 말했다.

"우리끼리 다닐 때도 이렇게 힘들었던가?"

"힘들었겠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 남편이 대답했다.

"그래도 아이랑 같이 오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네. 힘들어도 즐거움이 훨씬 큰 것 같아."

"그럼. 그러니까 다들 애 데리고 오는 게 아니겠어."

우리끼리 있으면 그냥 스쳐 지나갈 것도, 아이에겐 다 처음이라는 의미가 있으니 우리에게도 또 다른 의미가 되어 다가온다. 닫혔던 오감을 활짝 열고 아이와 같이 공감하기 위해 레이더를 켠다. 무엇보다 아이가 신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 이것이 압도적이다.


이렇게 우리도 부모로서의 경험치를 조금씩 쌓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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