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타임캡슐-MEMORY

#11. 순수와 달러 : Boracay

gowooni1 2012. 8. 27. 21:56

 

 

 

호핑을 하고 점심을 먹는 중, 원주민 여자 아이들이

조잡한 악세서리가 잔뜩 담긴 싸구려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다가왔다.

Mam, please.

얼핏 봐도 앞으로 절대 할 일이 없어 보이는 그 팔찌와 목걸이들을 사야 할 이유가 없어서,

Sorry, 라고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졸졸 따라왔다.

 

어린 나이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악세서리를 팔라고 집에서 억지로 내보냈음직도 한데,

더구나 뭐 하나 사줄 것 같지도 않은 사람 하나 쫓아오면서도 뭐가 좋은지 계속 즐거워 보여서

조금 미안해졌다.

사진 한장, 찍을까? 라는 한 마디에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는 소녀들 때문에 불편한 마음이 커졌다.

찰칵 소리가 이어진 후 옆에 서 있던 한 소녀가 갑자기 목을 끌어 안고는

볼에 쪽, 뽀뽀를 했다.

과감한 시도와 달리 부끄러워하며 저만치 달려가버렸다.

그리고 그 뽀뽀는 며칠 더 남아있던 여정 내내 머리 한 구석에서

마치 내려가지 않은 위장 속의 음식처럼 계속 걸렸다.

 

섬을 떠나는 날, 공항이 있는 육지로 가기 위해 배를 타러 나온 항구에서

그 소녀들을 다시 마주쳤다.

물론 나도, 아이들도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 하나 사달라고 하면 꼭 사줘야지, 하고 마음 먹고 있는데

사진을 찍을때조차 얼굴을 붉히며 가장자리에 조심히 서있던

가장 수줍음 많던 말라꺵이 소녀가

Mam, present for you.

하고 핑크와 흰색의 조개가 알알이 박혀있는 팔찌를 하나 건넸다.

순간, 왜인지 눈이 붉어졌다.

미안함 때문인지 고마움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 때문인지.

 

이런 순수함에 미처 익숙지 않은 나는 그만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어떻게서도 표현하기 힘들 마음을 어설프게 알리기 위해

주머니에서 급히 달러를 꺼내고 만 것이다.

급히 소녀의 손에 구겨진 돈을 쥐어주려하니

No no. It's a present,라며 뒷걸음을 친다.

Please, take it, 하며 억지로 쥐어주고

다 같이 맛있는거 사먹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머리속에 적당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고

배에서는 얼른 올라오라고 하고,

그렇게 어설프게 작별을 했다.

 

그 오달러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고작 돈으로 환산할 생각밖에 못한

어리석음에 대한 자책이고

소녀들이 나 때문에 순수함을 돈으로 계산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터무니없을지도 모르는 걱정 때문이고

다음에 또 만약 그런 선물을 받게 되면 돈 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뽀뽀를 해줘야겠다는 다짐 때문 혹은 그런 다정함을 키워야겠다는 용기 어린 각오 때문이고

순수하게 받아주는 것도 베풀어주는 게 될 수 있다는

뒤늦은 깨달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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